해방촌 고양이 우리 시대 우리 삶 2
황인숙 지음, 이정학 그림 / 이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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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맘이라는 말이 있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 그들은 길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역시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그만큼 생명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리라.

 

시인 황인숙은 남산 해방촌에서 산다. 해방촌에 살면서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동네 고양이들을 위해 먹이를 주기도 한다.

 

물론 동네 사람들 가운데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황인숙은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사랑, 그것은 곧 시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이 책 1부는 이러한 해방촌 길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많은 동네에서 길고양이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게 된 지금, 이 책은 조금 시일이 지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길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길고양이들 처지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시인은 길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비와 주차 차량 이야기를 한다. 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시인. 발이나 옷이 젖는 것도 좋아 비가 오면 한정없이 걸었다는 시인이, 길고양이를 돌보면서부터는 비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길고양이에게 준 먹이가 비로 인해 불어터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마가 되면 길고양이들이 너무도 안 좋은 환경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고마운 존재로 바뀌게 된다. 적어도 그렇게 주차되어 있는 차량 밑에서 길고양이들이 비를 피하거나, 더위를 피하거나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어떤 존재도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다는 것, 시인은 이렇게 길고양이를 통해서 존재들의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게도 해주고 있다.

 

읽다가 황인숙 시인이 낸 시집이 있는 것이 기억나서 시집 차례를 죽 훑어보았더니, 고양이에 관한 시가 두 편이 있다. 대충 훑어본 것이라 아마도 더 많은 시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시들은 다음과 같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풀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닥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황인숙,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문학과지성사. 1992년 4쇄. 14-15쪽.

 

  고양이

 

당신의 손끝이 내 등을 스치면

별들이 벌떼처럼 날아오르죠

당신의 손은 게을러요

당신의 손을 핥을 때

당신의 무릎에 턱을 비빌 때

떨어지는 몇 개의 별처럼

야아옹 서글피 당신을 부르는 걸

자, 그만. 하고는 마시지요

별은 내 마음에도 제멋대로 나타나

내 기분을 변덕스럽게 해요

나뭇가지 중에서도 하늘거리는

윗가지에 앉아

어지럽도록 흔들리는 게

나는 좋아요

별들이 반짝이는 건

몹시 흔들리기 때문이죠

내가 새조롱에 달려든다면

당신은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나는 당신의 새를

해치려는 게 아니어요

그저 그들과 함께 가벼이

당신 앞에서

반짝거리고 싶을 뿐

 

당신의 손은 게으르죠.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문학과지성사. 1997년 재판 2쇄. 74-75쪽.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화자의 소망은, 그렇지 못한 고양이들의 현실과 겹쳐져 사람만이 아니라 갇혀 있는 존재,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두 번째 시는 집에 있는 고양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이 어찌 고양이뿐이겠는가. 우리들의 손은 어쩌면 그렇게 게으른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서 반짝거리고 싶어 행동하는 존재들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 시. 내가 주변 사람들, 주변 존재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

 

고양이를 통해 나를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들과 황인숙이 경험하고 생각한 이야기들이 함께 실려 있으니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길고양이들을 먹이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좀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고.

 

덧글

 

수필을 읽는 재미가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가 젊음에 해당한다면, 소설은 중년에 해당하고, 수필은 노년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는데, 수필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돌아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이 글에서 이런 말을 읽고 이 말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 - 앙드레 모루아의 글이라고 한다.

 

"영광의 공허함을 알고 무명의 한 존재로 편안함을 얻으려는 기분" - 누군가의 말인지 모른다고 한다.  이 말 역시 앙드레 모루아의 글이라고 하는 글도 있다. (239쪽)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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