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 바이킹의 신들 현대지성 클래식 5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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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다시 읽고 있다. 여러 나라 신화를 읽었지만, 기억 속에 많이 남아 있지 못하다. 읽고 잊어버리고, 또 읽고 잊어버리고...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기억에 더 오래 남았을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또 읽었던 우리나라 신화나 그리스로마 신화는 쉽사리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데... 아마도 뇌의 많은 부분이 비어 있을 때 채웠던 지식이라서 그랬는지, 뇌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어른이 되면서 읽은 신화는 기억 속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 않는다.

 

다른 일들이 자꾸만 신화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로 들어와 신화를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읽었던 신화가 신비로움, 경이로움을 자아내었다면, 어른이 되면서 읽은 신화는 그런 것들을 걷어내고 과학과 합리라는 이름으로 무언가 해석을 하려고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신화를 읽으며 신화 속에 빠져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를 자꾸만 현실로 가져오려고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실, 신화는 신들을 빙자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인간들이 꿈꾸던 것들을 신들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낸 것 아니던가. 그러므로 신화는 곧 우리들 이야기임에 확실한데...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현실에서 신화를 통해서 우리 삶을 다시 보기가 힘들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신화는 필요하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한, 신화는 인간과 함께 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지면 신화 역시 사라지겠지. 다른 생명체가 나타나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또 신화라고 한다면,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이야기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결이 다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인간이 끊임없이 등장해서 신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살아가는데, 이 북유럽 신화에는 인간의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신들의 이야기, 신들이 인간처럼 생로병사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신들에게 적대하는 세력인 거인족이 있고, 재주는 있으나 다른 세계에 살며 신들에게 물건을 만들어주는 난쟁이들이 나온다.

 

거인족과 신들은 갈등 관계에 있고, 또 신들도 서로 반목하기도 한다. 신들의 종류를 두 종족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 북유럽 신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에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이 전쟁을 하다가 휴전을 하고, 서로 신을 파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 신화의 앞부분에 나오는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신들은 전쟁을 한다. 티탄족과 올림푸스 신의 전쟁... 북유럽 신화도 역시 신과 거인의 전쟁이 나오니, 비슷하다고 해야 할 수 있고. 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은 불사의 존재다. 그들은 죽지 않는다. 늙지도 않는다. 그래서 신이다.

 

한데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은 스스로의 힘도 힘이겠지만 다른 물건의 도움을 받아 더 강해지고, 또 늙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세상에 신이 죽는다. 발데르라는 신이 죽는 과정은 아킬레스가 죽는 과정과 비슷하다.

 

또한 마지막 전쟁, 라그나뢰크에서 신들은 거의 대부분 죽어간다. 거인족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이 죽음 이후 다른 시대가 다시 시작한다. 역사는 순환한다. 그렇다. 하나만이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할 수 없기에 더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북유럽 신화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나온 이야기일테니, 그들의 호전적인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신들은 계속 다른 존재들과 갈등을 한다. 그것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리라.

 

그렇게 신들은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를 이룬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우리 삶을 생각하게 된다.

 

문명의 정점에 올랐다고 했을 때, 정점에서 내려올 일만 남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이 이대로 계속 존속하기는 힘들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라그나뢰크에서처럼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신화를 읽는 이유가 바로 현실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라면... 북유럽 신화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 책 276쪽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에는 역시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듣고자 하는 자에게는 큰 소리로 알려주거라! 이 말을 새기는 자들은 번성하리니! 듣고자 하는 자에게만 들려주거라!' (276쪽)

 

불경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한다. 성경에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라고 한다. 그렇다. 듣고자 하는 사람, 들을 귀를 지니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들, 그것이 바로 경전이고 또 신화다.

 

그런 들을 귀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 좀더 듣고자 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화이지 않을까 싶다. 경전보다 철학책보다 더 들을 수 있는 자세를 지니게 하는 것이 신화니 말이다.

 

우리게에 좀 생소하지만 그래도 영화 '토르'나 '어벤져스'를 통해 알려진 천둥의 신 토르와 악당 로키를 접한 사람에게는 친숙한 신화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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