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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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읽은 책이다. 그때는 사회-역사 지식이 부족해서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또다른 동물이 독재를 한다 정도로만 이해하고 말았던 책이다.

 

다시 나이들어 읽으면 그동안 살아온 것들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 해설에서도 나오지만 책이 발간될 당시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풍자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았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소설이 발간된 지도 70년이 넘었고, 그만큼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했고, 또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던 것이 이제는 종교 대립이나 경제 대립으로 넘어가 버렸으니, 지금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오웰이 풍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소련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바로 소련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들의 반란은 민중들의 혁명이고, 정권을 잡은 돼지는 스탈린이며 쫓겨난 돼지는 트로츠키라는 것. 그리고 한없이 일만 하다 죽게 되는 복서(말)는 프롤레타리아를 의미한다는 것. 여기에 스퀼러라는 돼지가 나오는데, 이는 왜곡된 언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민중은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 혁명은 곧 몇몇 권력가들에 의해 배신당하게 되고, 민중들의 삶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얼핏 보면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소설같지만, 사회주의라는 이념보다는 스탈린이라는 권력자가 사회주의 이념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 (어쩌면 그는 아나키스트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동물농장 말고 또다른 글이 두 편 실려 있는데, 한 편은 '자유와 행복'이다. 인간에게 자유와 행복은 양립할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독재자들은 양립할 수 없고, 행복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롭지 않은 행복이 어떻게 행복일 수 있을까? 동물농장에서 다른 동물들은 서서히 자신들 자유를 잃어간다. 잃어가는 줄도 모르고 잃어가는데, 이들 삶은 점점 버거워지고 힘들어진다. 반면에 몇몇 권력자들은 점점 더 살찌게 되고.

 

그러니 우리는 자유와 행복은 양립해야 한다고,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이 점을 '동물농장'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동물농장'은 단순히 스탈린 체제에 있던 소련 사회를 풍자하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들이 잘살기 위해서 벌이는 일들이 바로 '자유와 행복'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일이라는 것.

 

인간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이들은 그래서 자유를 획득했지만, 곧 자유는 구속당하고, 행복은 강요당한다. 강요된 행복은 왜곡된 언론에 의해서 진정한 행복인 것처럼 가려지지만, 그렇다고 진정으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이들은 점점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돼지와 인간들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많은 동물들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혁명은 혁명 이후가 더 중요하다. 혁명 이후 발을 잘못 디디면 혁명 전과 같은 상황으로, 아니 더 나쁜 상황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물농장'에서 권력을 쥐게 되는 돼지들 말고, 다른 동물들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하던 복서가 결국 팔려가, 권력자들 향연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주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이 소설이 씌어졌다고 보면 된다. 또다른 글인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143쪽)

 

한참 세월이 흘렀지만 이 소설은 우리에게 혁명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어서 지금도 유효하다.

 

혁명 자체도 중요하지만, 혁명 이후가 더 중요함을 소설은 생각하게 한다. 혁명 이전의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 왜곡된 정보를 흘리는 언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민중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깨어 있더라도 참여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소설에서는 당나귀 벤자민이 이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혁명 이후를 예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행동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이 점도 경계해야 한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사회-역사와 관련지어 읽으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꿈꾸며 읽으면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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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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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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