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들어올 거라 우산을 챙길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나갔는데,
들어오는 길에 기어코 비가 내린다.

끈적해서 씻고 나오니 바깥이 온통 노랗게 빨갛게...
이상하다.
내가 바깥쪽 불을 켜두었나?
그리고 우리집에 노랗게 빛이 나올 조명이 없는데.

밖을 보니 이 비 속에서 해가 넘어가고 있더라.
진짜 오랜만에 이런 빛의 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가을이 바짝 다가온 느낌.

이 더위에도 올 계절은 오네...

(구름에 가려지는 햇빛이 너무 예쁜데,
사진으로 다 담아지지가 않는다.
워낙 똥손이라 기대도 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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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3-08-09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노을이 이뻐서 몇장 찍었어요. 남양주 사는 친구는 하늘이 핑크였다더군요🙂

구단씨 2023-08-10 14:24   좋아요 1 | URL
어제 이 동네 사람들에게 쌍무지개 사진을 엄청 받았어요.
그런 날이었나 봐요.
더위에 지치고 많은 일로 힘들었는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한 컷에 잠시 마음 놓는 시간.
 
노인들은 늙은 아이들이란다 I LOVE 그림책
엘리자베스 브라미 지음, 오렐리 귈르리 그림, 김헤니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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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애가 된다.’라는 말을, 완전하지 못하고 실수도 잦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해해야 한다는 말로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말에 꼭 한마디 덧붙인다. ‘애는 귀엽기라도 하지!’ 그 말에 또 살짝, 무슨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또 들고. 그러니까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하며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늙은 모습에 실수하는 건 귀엽지 않으니까 밉다는, 뭐 그런 마음일까?


요즘 엄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물건 하나 주문해달라고 해도 뭐가 그리 요구하는 게 많고 거슬리는 게 많은지, 그렇게 까탈스럽게 할 거면 그냥 사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적도 여러 번이다. 그 순간 뜨끔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엄마보다 젊은 나이이지만, 물건 하나 구매하는데 하는 행동이나 생각은 엄마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ㅠㅠ 아, 아직 노인이 아닌 나도 늙으면, 지금과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밉게 보이려나 싶은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어디에 소속되거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때 찾아오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말이다.


노인복지 관련된 영상을 보다가 이 책이 언급되어서 찾아봤는데, 나이 듦을 공감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기본이고, 노인의 말과 행동을 더 깊게 잘 이해하게 하는 그림책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노인들은 모두 머리가 하얗게 세거나 완전히 대머리가 되기도 하지.’ 대화하듯 이어지는 문장에는 게다가 우리는 이제 치아가 없어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종종 쩔거덕거리는 하얀 틀니를 끼고 견뎌야 한단다. 무척 불편하고 재미없는 일이야.’라는 말로 앞선 문장을 설명하듯 말한다. 치아가 없어서 틀니를 끼워야 하고, 음식 먹을 때마다 틀니가 움직일 수도 있고, 잇몸과 틀니 사이에 끼는 음식물들을 씻어내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비단 불편함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지금 이런 내 모습이, 내가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 한없이 울적해지기도 할 거다. 가끔 어떤 상황에서 젊은 사람이 노인의 말과 행동에 틀딱이라고 조롱하며 무시하는 때도 봤다. 물론 나이 먹고 어른답지 못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단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많은 것에서 배제하고 우습게 여기는 것도 문제이지 않을까.


누구나 부모를 잃는다. 우리의 부모가 그랬고, 내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도 자식이 있는 노인들은 부모로 살아가거나, 조부모가 되기도 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잘 채워지는 가족 관계가 이어질 것만 같다. 자식이 있는 노인들은 시간이 나면찾아오는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말을 계속 생각했다. 그마저도 자주 오지 않으니 이런 만남이 결코 충분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없는 시간 쪼개서 시골에 가고, 한 번 더 통화하며 안부를 묻는 것을 무슨 생색내듯 생각한 적도 있다. 각자의 일상을 살다 보면, 바로 코앞에 살아도 찾아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여겼으니까. 굳이 명절에 시골에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이유로 남편과 싸우기도 했다. 이제 나도 늙어가고, 엄마는 혼자 계시고, 여전히 일상은 바쁘지만 챙겨야 할 목록에 늙은 부모가 당연하게 자리했다. 남편에게는 형제가 없고, 우리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언젠가는 나와 연관된 모든 가족 관계가 끝날 테지. 그때는 어떤 기분일까. 애타게 기다릴 자식이 없으니까 가끔 찾아오는 자식에게 느끼는 서운함도 없으니 나쁠 것도 없지, 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노인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서 더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인이 버텨 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지만, 어떤 노인은 다른 이의 도움을 반기지 않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삶에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시간을 보내는 노인도 있지만, 많이 웃으면서 살아가는 노인들의 눈가에 예쁜 햇살 같은 주름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이에 비례해서 얼굴에 담아내는 주름의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 말이 가슴에 꽂힌다. 인상만 쓰다가 박제되어버린 사나운 주름이 아니라, 나도 많이 웃고 행복하게 늙어가는 예쁜 주름을 갖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이 덧대어지는 이야기에, 이 짧은 표현들에 울컥해지기도 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 세월의 흔적과 인생의 끝부분에 닿았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도, 감히 어떤 모습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만이 정답인가 싶어서.


생일을 축하하는 일도, 지나온 세월을 추억하는 일도, 늦은 나이에 찾아온 사랑을 하는 것도 다른 나이의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얘기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가고,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것도 똑같다. 그러면서 더 나이가 들고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순간이 오면 어딘가로 떠나게 되기도 한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하고, 주변의 많은 것을 정리하며 어떤 순간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 책 속의 노인은 당부한다. ‘혹시나 우리 정신이 오락가락하거나 기억이 그다지 또렷하지 않거나 잊어버리고, 같은 얘기를 자꾸 되풀이한다 해도그게 노인들이 멍청하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그냥 평범한 사람,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듯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사람, 사랑으로 삶의 맛을 느끼는 사람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노인이 된다면’, 상상하기는 쉽지만, 상상 속 현실을 감당하고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곳만 봐도 쉽게 알게 되는 현실 속 노인의 모습이 있다. 언젠가 우리도 노인이 된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은 물론, 그 시간을 사는 지금 노인의 일상을, 인생을 알게 될 거다. 모른 척하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게, 빠르게 고령화되어가는 세상을 모습을 본다. 특히 대한민국의 고령화는 속도가 겁나게 빠르다지. 이런 흐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노인에 대한 이해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관계를 유지하고 소통하는데 필수요소가 된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하며, 노인의 모습을 어둡게만 그리지 않으면서, 그 일상의 섬세한 감정까지 전달하고 있다. 노인의 현재이면서 자신의 미래가 될 시간을 공유하는 이야기에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한다.


#노인들은늙은아이들이란다 #너희들도언젠가는노인이된단다 #엘리자베스브라미 #보물창고

##그림책 #어린이책 #책추천 #책리뷰 #노인에대한이해 #세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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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보 이판사판
리사 주얼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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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받아왔는데, 막상 읽을 시간이 안 되어 시간만 흘렀고, 그냥 반납하기에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살짝 내용만 살펴보려고 하다가, 결국 끝까지 다 읽고야 말았다는 사연.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뉴스에서, 고발 프로그램에서 종종 접하던 이야기였다는 게 씁쓸해지기까지 했다. 이거, 소설이 아니니까 말이다.


“25번째 생일을 맞은 리비는 변호사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는다. 거기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가 자신에게 대저택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매일매일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노력하던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리비는 이 저택에서 세 사람이 동반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발견한다.”


책 소개 글에 혹하지 않은가? ^^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대한 생일 선물을 받는 기분은 어떤 걸까 싶어 상상하다가, 선물로 받은 대저택에 죽음의 사연이 있다는 게 찜찜했다. 내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이 저택을 받아놓고 혼자 고민하는 게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뭐, 상상은 할 수 있는 거잖아? 리비는 양부모 아래서 성장했고, 사실 친부모를 찾아보려고 애썼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삶에 충실하느라 어떤 여유를 가지고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유산에 좋아하기에는 약간 미심쩍은 사연을 듣게 된다. 상속이 되었으니 받긴 받겠지만, 이놈의 호기심은 이 저택의 사연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오래된 신문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그 기자에게 연락한다.


소설은 현재의 리비와 신문기자 밀러 연합, 1988년의 첼시(대저택)의 세월을 들려주는 화자, 또 한 사람인 현재의 루시가 이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듣다 보면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시선으로 이 저택의 모습을 재연하는 듯해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리비는 이제 자기 몫이 된 저택에 관해 알아야 했지만,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그때의 진실을 알 방법이 없다. 화자인 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를 에게 그때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고 파괴되었는지, 왜 그 저택에 죽음이 깃들었는지 설명하려는 듯했다. 정해진 주거지 없이 떠돌면서 하루를 견뎌내는 게 최선인 것으로 보였던 루시와 아이들은 또 어떤 사연으로 이런 인생을 살고 있던 건가.


세 사람이 차근차근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또 한 번 고민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타인의 삶을 무너뜨리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빼앗는 이의 최후는 어때야 하는지. 물론 나는 이 저택에 남겨진 3구의 시신이 당연한 죽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데이비드 톰슨은 이 정도로 끝나서는 안 될 인물이기에 화가 좀 나기도 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상대의 나약한 면을 파고들어 가스라이팅하거나, 강압적으로 상대를 누르면서 자기만 챙기는 인간이라면 죽어도 싸다. 생각해보면 이런 인간 여러 번 본 것 같다. 전혀 이해 안 되는 어느 종교의 교주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과 당연함을 강요하다가, 어떤 관계인지 이름 붙이지 않아도 만들어질 수 있는.


영원할 줄 알았겠지. 남의 것을 탐하고 빼앗으며, 다른 이의 고통쯤은 가뿐히 무시하며 살아가는 게 줄곧 쉬웠겠지. 공동생활의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정하고, 이것만이 옳은 거라며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며, 혼자서 이 모든 것을 조종하며 자기 것을 채우는 만족감을 누리고 사는 동안, 다른 이는 무너져가고 있었다. 헨리의 가족이 나약해지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되고, 저택에 모인 이들이 느끼는 부조리함에 떠나고, 이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까지 심어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폭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보이는 것 말고 상처 안에서 곪고 있을 때 더 심각하다는 거다. 읽는 내내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른들이 저질로 놓은 폭력과 나약함으로 이 아이들이 빼앗긴 25년의 세월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지?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되고, 그때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세월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나이에 한참 누리고 배우고 사랑받아야 할 것이 사라져 버린 지금, 모든 게 좋은 것으로만 마무리되지 않는다. 뒤끝이 긴 독자의 삐딱함이라고 해야 할까.


성장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우리가 각자의 인생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건 안다. 그걸 알게 되기까지 누군가 끌어줘야 하고, 알려줘야 한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이가 가장 먼저는 부모일 테다. 어른이, 부모가 자기 역할을 망각하거나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기를. 누구보다 내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 지킴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소설이다.


#가족주의보 #리사주얼 #북스피어 #문학 #소설 #추리소설 #영미소설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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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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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에 유독 화난 고객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처음부터 고객이 불만을 품은 채로 수화기를 들어서다. 서비스를 아무 문제 없이 사용했다면 애초에 콜센터에 연락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고객은 일단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상담원과 연결된다. 게다가 회사는 영업이나 개발 등 다른 부서보다 유독 콜센터에 들이는 비용을 아까워한다. 최소한의 인력만 유지하려니 어쩔 수 없이 길어진 대기 시간도 고객의 짜증을 유발하기 쉽다. (165~166페이지)


맞다. 콜센터에 전화할 일이 생긴다는 건, 현재 나의 상황, 혹은 상품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서부터 개인 쇼핑몰까지, 요즘에는 일상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고객센터와 연결되어 있다. 나부터도 오늘 대형쇼핑몰 고객센터와 통화하기 위해 거의 5분의 넘게 듣기도 싫은 멜로디를 듣고 있었다. 잘못 구매한 신발 사이즈 때문에(여러 가지 이유로 앱으로 처리 못 할 상황) 굳이 상담원과 통화해야 해서 참고 기다렸다. 그래도 이건 내 잘못이니 참고 기다려야 한다. 왜 기다리면서 아까운 내 시간을 버리게 하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전화기를 드는 순간 화가 난 상태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전화까지 해야 할 상황이 된 게 이미 짜증이 난 거다. 고객의 이 기분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건, 통화가 연결된 그 순간의 상담원이다.


저자가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헤드폰을 끼고 마이크로 전달되는 목소리에, 눈을 모니터를 향해 있고, 손가락을 쉬지도 않고 자판을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겠지. 여느 콜센터와 다르지 않은 모습일 테다. 거기에 하나 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일본어가 능숙한 한국인이, 수화기 너머 보이지 않는 고객을 상대로 이 까다로운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는 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고객이 무슨 내용으로, 어떤 마음으로 전화했을지 모를 상황에 아무리 유창한 외국어라고 해도 그냥 대화하는 게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일이라면, 글쎄, 어느 정도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을까?


이미 높은 확률로 화가 나 있는 고객을 대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상대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말로 대화하는 일상에서 조금 더 높고 정중하게 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감정까지 헤아려야 한다. 미안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죄송하다는 사과 먼저 하고 시작하는 대화가 참 마음이 아프다. 일부러 시간 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이렇게 수화기를 붙들게 만든 당신에게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일. 콜센터 상담원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닌데, 들을 때마다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이직률이나 흡연률이 높다는 어느 보고에서도 느꼈지만, 이들의 업무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껏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시작하는 대화가 쉬웠을까. 이곳에서 일하는 게 저자의 꿈이나 바람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던 일자리 시장에서 그의 구직에 회신을 준 회사였다. 잘할 수 있겠다는 용기는 가능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는 감정 노동은 대혼란이었다. 그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기만의 공간에 풀어놓은 것이, 이렇게 책이 되어 독자 앞에 놓인 거다.


온갖 감정을 가지고 전화를 해오는 고객에게 적응이 좀 되었을까. 본인만 견딘다면 퇴사할 일 없을 것 같은 콜센터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전 세계 모두가 겪은 코로나 19. 특히나 여행사의 콜센터에서 일하는 저자에게는 더 크게 다가온 위기가 아니었을까. 갑작스러운 펜데믹에 여행 취소와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해 콜센터 전화가 폭발할 지경이었고, 한 차례 쓰나미가 휩쓸고 간 콜센터에 정적이 흐르듯 인원 감축 바람이 분다. 여행 금지(자제) 분위기에 여행사인 회사의 어려움이 닥쳤고, ‘부득이하게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메일을 받고서도 괜찮다라고 말하고 떠나는 동료들을 괜찮게볼 수 없음을 경험했다. 그러고도 남은 사람들은 콜센터에 걸려오는 고객의 불만에 응대해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여행 취소나 조건 변경 등 고객이 뭔가를 원하거나 조정하는 상황은 그대로였으니까 말이다. 그럴 때마다 늘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상담원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또 이용해 주세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당신을 불편하고 번거롭게 했음에도 또 이용해달라는 간절한 부탁까지 덧붙이는 게, 어떤 마음일지. 그들이 하는 말은 감정은 담은 것보다 그저 업무를 위한 말들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밥벌이의 고단함일 뿐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의 인격체로 감당하기에 너무 심하다 싶은 경우도 많기에,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에, 언제나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될 것 같다.


선의를 베푸는 데는 대단한 수고가 들지 않는다. 무심코 건넨 배려 섞인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단비와 같은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있어 누군가는 그날 하루, 혹은 더 긴 시간을 너끈히 버티기도 한다. (121페이지)


이곳에서도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그 시간 동안 견디며 일해왔을 수도 있다. 익명의 누군가가 반말로 시작해서 험한 말을 퍼붓기도 하고, 외국인 상담사여서 근거 없는 차별을 받기도 하면서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가 하는 고맙다는 말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한 마디에 또 많은 시간을 견딜 수도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저자의 글 곳곳에 담긴 많은 이야기가 단지 콜센터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일, 겁도 없이 무작정 부딪혔다가 알게 되는 힘든 시간, 경쟁 사회에서 노력과 상관없이 밀려나며 대신 찾은 자유, 어느 곳이든 사람이 머무르는 곳에 넘치는 애틋한 관계까지 경험한 저자의 성장일기 같은 이야기다.


세상에 완결 무결한 사람은 없다. 불완전한 기업이 만든 제품을 소비자가 사용하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다시 불완전한 콜센터 상담원이 해결하려 애쓴다. 이 사실이 의도된 잘못을 감싸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힐 이유는 되지 않을까. 당장 콜센터 상담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거나 사회적 시선을 변화시키기는 힘들어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196페이지)


#콜센터의말 #이예은 #민음사 #에세이 #문학 ##책추천 #책리뷰

#콜센터 #상담원 ##감정노동 #언어폭력 #말의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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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2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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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맘때쯤 찾아오는 장마가 낯설지는 않았다. 매해 그렇듯, 이 꿉꿉함을 좀 참고, 우산을 챙겨야 하는 불편함을 며칠 견디면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괜찮았다. 올해의 장마는 다른 것 같다. ‘극한을 붙인 폭우가 등장했다.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온다. 쉴새 없이 안전안내문자가 온다. 집에서 한 블록 내려가면 보이는 사거리는 차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물에 잠겼다. 해마다 비가 많이 오면 어느 정도 발목을 적시는 정도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폭우가 쏟아지면 위험한 곳이 됐다. 맨홀 뚜껑이 날아가 사고가 난 차가 있을 정도다. 수시로 일기예보 확인이 습관이 됐다. 비단 비 오는 날 뿐만 아니다. 너무 더워도, 폭설이 쏟아져도, 미세먼지가 심해도 살펴보게 된다. 갑자기? 아니다. 늘 그랬지만, 새삼 요즘의 날씨가 변덕이라 더 챙겨보게 되는 거였다.


날씨에 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날씨는 대기와 땅, 햇볕이 만들어내는 음악 같다는데, 오늘 날씨는 어떤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굉장히 어둡고, 거칠고, 심란한 음악 무엇일까 찾아보게 될 정도다. 저자는 장맛비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듣고 싶다고 말하더라. 폭풍우에 갇혀 밤새 돌아오지 못한 연인 조르주 상드를 걱정하며 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쇼팽.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내리듯 맨홀로 빨려 들어가는 빗물을 얘기한다. 이렇게 듣고 보면 참 분위기 있어 보이는데, 미안하지만 오늘의 장맛비는 분위기만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위험을 동반하기에, 솔직히 좀 밉다. 어쨌거나, 단순히 불편하고 싫다는 마음으로만 말하는 날씨가 아니라, 기상학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날씨의 과학과 음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절로 날씨에 맞는 음악을 상상하게 되면서, 다양한 날씨의 모습을 설명하는 문장은 또 어떻게 들려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대륙의 동쪽 끝에 있다는 한반도. 북쪽의 육지와 남쪽의 바다 영향을 받는다는 건 이미 지도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반구의 중위도 온대 지방에 위치하며 저기압과 고기압의 영향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고, 이 기압의 이동으로 날씨의 변주가 이루어진다.


변화무쌍한 한반도의 봄 날씨는 강물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단다. 시베리아 적도를 흐르던 찬 공기가 양쯔강 자락의 따뜻한 기운과 만나 요란한 비를 쏟아낸다고. 잔잔하게 내리는 봄비를 연상하면 봄날의 건조함을 사라지게 해줄 적당한 비가 생각나는데, 이미 문장에서 들려오듯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 비구름을 만들 때 얼마나 무서운 분위기로 비가 내리는지 안다. 기상 현상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정도는 우리가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 빠른 리듬의 음악이 저절로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둔탁하고 무겁고 세게 두드리는 악기를 연상하게 된다. 아마도 지금 내리는 비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는 수시로 끼어드는 효과음에, 경쾌함이 아닌 운명이 바뀔 것 같은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딱 맞는 시기인 여름 장마철.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로 오면서 그 가장자리의 수증기가 비구름대가 만들어진다. 이때 많은 비가 내리는데,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되어 한반도를 덮는다면 수증기 물길이 한반도를 피해가고 열대야가 온다는데. 생각해보니 장마철 폭우도 싫고 열대야도 싫은데, 여름을 견디는 게 참 힘든 일이구나. 들으면 들을수록 날씨에 관한 예측과 현상은 신기하면서도, 지구의 기후변화에 더 민감하게 다가가게 된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그 자리를 다른 공기가 채우고, 태양의 높이에 따라 열의 양이 달라지고, 육지와 바다의 분포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날씨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자연이 그러하니,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짧은 듯, 있는 듯 없는 듯 지나는 가을을 생각하면 괜히 울적해진다. 겨울의 추위가 오기 전, 가을 특유의 서늘함을 좋아했다. 한반도에 북풍이 불어오면서 북쪽의 찬 공기가 높은 구름을 만들어내고 구름층이 엷어진다고 한다. 가끔 우박이나 소나기가 가을의 운치를 위협하면서 대기 불안정을 만들기도 한다. 농작물의 우박 피해 뉴스를 보다 보면, 날씨는 우리 삶에 너무 밀접하다. 농사뿐만 아니라 식량과 관련된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후 문제가 중요하다. 적당히 물이 찬 논에 모내기하고, 뜨거운 햇살에 잘 자랄 때 풀이 나지 않게 한 번씩 관리해주고, 가을바람 불어오면 추수하면서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게 농업인만의 일은 아니다. 농산물은 농업인의 수입이기도 하지만, 그 농산물로 만들어지는 가공식품과 다른 업계에까지 하나로 연결된 것을 생각하면, 날씨 문제는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닌 게 된다. 이쯤 되니 이 책이 새롭게 보인다. 날씨와 음악, 서정적인 문장이 들려올 거로 생각했던 건 착각이고, 조금 더 관심 두어야 할 분야가 되었다.


몇 년 전에 겪었던 혹한을 떠올린다. 지독하게도 추웠던 날, 기차를 타려고 역 플랫폼에 서 있는데, 어떤 어르신의 말이 생생하다. 8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런 추위는 처음 겪어본다고. 대기의 방향이 바뀌어 시베리아 고기압이 세력을 키워 한반도를 지나가면서 추위가 찾아온다. 예전에 들었던 말인데, 삼한사온.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온대저기압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반도 주변을 지나갈 때, 저기압이 접근하기까지 나흘 정도는 남풍 계열의 바람이 불면서 기온이 조금 오르다가, 저기압이 통과하면 북풍을 타고 한기가 내려오면서 사흘 정도 기온이 떨어지는 현상이라고.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이라고 배우고 겪으면서 자랐는데, 어느새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거의 두 계절로 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변했다. 지독한 더위 아니면 추위. 그사이에 낀 봄과 가을은 월급이 통장을 찍고 지나가듯 잠깐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느낌이다.


날씨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저자의 시선을 그대로 옮길 수 없어서 유감이다. 하나하나 다 적자니, 날씨의 변화를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기후변화의 문제를 저자도 인식하고 전달하려 애쓰는 모습이 확인된다. 계절을 클래식 음악의 악장과 같다고 느꼈던 거에 비하면, 가속하는 지구온난화는 악장의 길이가 바뀌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래서 저자는 짧은 1악장의 봄이나 점점 길어지는 2악장의 여름처럼, 다양한 변주곡으로 날씨를 이야기한다. 날씨의 음악이 얼마나 더 다양하게 들려올까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는 건, 지금 지구의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건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날씨로 전하려는 음악을 듣는 건 즐거웠지만, 그 음악이 자연의 현상에서 들려오는 거로 생각하면 내가 되돌려줄 음악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요즘의 폭우가 아름다운 음악을 망가뜨린 것처럼 여겨지는 건 나뿐인 걸까.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의 지식과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테고, 여러 가지 기후변화를 지켜본 이가 전문적인 시선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날씨를 예측하고 전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껴진다. 특히나 어느 순간부터 예측에서 벗어나는 기후 문제가 등장하면서 정확한 날씨 전달은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기예보가 빗나가더라도 구라청이라는 오해보다 그 어려움을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아직도 우리 삶은 날씨에 따라 일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마음의 리듬이 달라지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 날씨를 살피며 하루를 계획하기도 하니까. 며칠 전에도 엄마는 이 더위가 힘들다며 달력을 들추었다. 처서가 언제냐며, 이 폭염이 좀 사그라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하루를 견디고 계셨다. 개인의 생활과 우리나라의 많은 것을 살피는 날씨, 크게는 이 지구상에서 연주되는 날씨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날씨나 기후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다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흐름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금 더 깊게 집중해서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살면서 겪는 다양한 날씨와 우리 살아가는 기후 환경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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