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변종모의 책 중에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는 짙은 외로움이 담겨 있는 책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에게 여행은 생활이자 불치병임에는 틀림이 없다.
언제 떠나서 언제 돌아오리라는 기약도 없이 발길이 닿는 곳에서 머물고 싶으면 몇 달이고 머물다가 문득 떠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면 훌쩍 떠나는 그는 8년간에 걸친 사랑이 단 8분도 채 안되는 전화 한 통으로 끝나 버리는 아픈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그는 길 위에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언젠가는 '폭풍같은 후회'를 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있었던 그에게 날라온 소식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니....
그래서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는 짙은 외로움이 뚜욱~ 뚜욱 ~ 떨어지는 감성적인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라면 그 치유 방법은 좋은 사람과의 인연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 변종모의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는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와 그리 다르지 않은 감성적인 글들이 담겨져 있다. 그 글과 함께 실린 사진들은 사진을 보는 순간 글 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줄 것만 같은 느낌이 있는 사진들이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n/e/netsgo85/20130510082003694199.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n/e/netsgo85/20130510082003768763.jpg)
구태여 두 책을 비교하자면, 책 속에 담긴 여행지는 같은 곳일지라도 그 곳에서 느끼는 생각들은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는 외로움이 담겨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는 조금은 그 외로움이 덜어진 느낌이 든다. 그것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함께 나눈 음식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먹기 위해서 준비하는 조촐한 식사, 누군가가 만들어 준 한 끼 식사, 스스로가 먹기 위해서 한 음식 이야기가 외로움을 덜어내 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여행 중 길 위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그 사람들이 소박하게 내 놓았던 음식 이야기, 그리고 그가 만들어 준 음식의 레시피(?)가 담겨 있다. 레시피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하면 안 되고, 그냥 그만의 음식 만드는 방법이 몇 개 소개된다.
말하자면, '음식이 가져다 준 먼 곳의 당신 이야기'이다. (작가는 유독 당신이란 지칭을 많이 쓴다)
" 세상은 아직도 많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길 위의 당신들. 그때 당신이 보잘 것 없다 말한 그 한 그릇이 나에겐 너무나 넘쳐 났으므로, 언젠가 그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따뜻한 한 끼, 그기로 그것을 채워주던 따뜻한 시간들. 그 속에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prologue 중에서)
훈자에서, 그리고 이집트에서 또 다시 만났던 그녀, 그녀와 그의 공통점은 길 위에서 같은 슬픔을 맞이했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길 위에서 듣게 된다면 그 슬픔은 얼마나 클까?
그녀가 해 준 따뜻한 한 그릇의 식사는 하얀 쌀밥과 고소하게 볶아진 감자볶음. 이 소박한 한 끼의 식사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길 위에서 맛보는 행복이 아닐까.
새해 아침에 엄마가 끓여 주던 만둣국을 생각하면서, 그는 사과를 뚝뚝 잘라 넣고 사과향이 새콤하게 번지는 만둣국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만난 잠깐의 가족들과 그 음식을 먹기도 한다.
푸리에서는 '진짜 피자를 먹고 싶다는' 브론과의 생각의 일치로, 푸리에서 방갈로르까지 피자를 사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달려 가기도 한다.
" 페페로니 가득한, 브론이 말하던 진짜 피자. 치즈가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지고 고소한 빵에 자글자글 기름이 흐르는, 브론이 말하던 그 진짜 피자. 이 뜨거운 남인도의 열기보다 더 열정적인, (...) 어느 지독한 여름날에 문득 오늘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저지른 이 무모함이 따뜻한 한 조각의 기억이 될 수 있을까 ? (p. 147)
그러나 " 늘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것이 삶이고 늘 후회하면서도 반성하지 못하던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가 버렸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후회만 남는 것들이 있다." (p. 60)
어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단 한 마디의 말씀, " 밥은 먹고 다니냐?" (p. 223) 그러나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말. 그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새콤 달콤한 물김치가 길 위에 선 그의 머리 속에 맴돌기도 한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n/e/netsgo85/20130510082154872679.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n/e/netsgo85/20130510082156985322.jpg)
여행자에게는 홀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월남쌈인데, 그는 제법 전문가다운 레시피를 공개한다. 아니 월남쌈은 재료의 종류가 많다고 가격이 비싼 것이아니고, 번거로운 요리 과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의 말처럼 칼질만 조금 열심히 하면 여러 명이 즐겁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월남쌈을 만들어서 함께 먹기를 청하니, 이제 그는 그리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기억 속에도 어떤 여행지에서 맛 본 잊을 수 없는 음식들이 있고, 그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해 준 음식이 아니고, 그가 해 준 음식이 아니건만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 따뜻한 인사 나 그 보다 더한 결속이 될 수도 " ( 책 속의 글 중에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은 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그 느낌들은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