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더 머니
존 피어슨 지음, 김예진 옮김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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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유산에 매혹되었다가 프랑스 제2제정의 벼락부자 가족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본 발자크는 "모든 막대한 재산 뒤에는 거대한 범죄가 있다"고 썼고, 스스로도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게티 가문에 벌어진 일을 보면 발자크도 당황할 것이다. 게티 가문 정도의 재산을 쌓으려면 더러운 짓이나 표리부동한 행위를 저질렀을 법도 한데 실질적으로 지적할 만한 범죄가 일어난 적은 없으니 말이다. 물론 '거대한' 범죄가 없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로 기네스북에 오른 석유재벌 진 폴 게티. 그는 자선은 물론이고 친자식들에게 돈 주는 것도 탐탁지 않았던 구두쇠였다. 덕분에 그의 아들들은 재벌 3세라면 흔히 예상하는 그런 사치스러운 생활이나 응석받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아들은 게티가 죽기 3년 전에 자살했으며, 다른 아들은 알코올과 헤로인 중독으로 거의 비슷한 짓을 할 뻔했고, 세 번째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상속자 목록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게티의 큰손자는 이탈리아 마피아에게 납치되었고, 그 여동생은 에이즈로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게티 가문의 재산에 관해 밝혀지지 않은 가장 큰 수수께끼는 어째서 그것 때문에 수혜자들이 그토록 고통을 받았는가에 있었다. 돈이 없어서 죽어간 목숨이 수백만인데, 그렇게나 거대한 부의 꼭대기에서 엄청난 돈을 가졌던 게티의 아들딸들은 그토록 큰 고통과 피해를 받아야 했을까.

"내게 손자가 열넷이나 있는데 지금 몸값에 1페니라도 냈다가는 열 네 명 모두 납치당하지 않겠소?"

 

폴 게티를 납치한 이들은 아이를 돌려받고 싶으면 자신들이 요구하는 돈을 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만한 돈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몸값을 위해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지만 진 폴 게티의 반응은 정상적인 사람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물론 그의 말처럼 그가 몸값을 지불하게 되면 다른 누군가가 또 다른 손자를 납치할 명분을 제공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맏손자가 현재 범죄자들의 손아귀에 있고 그들에게 생명을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폴의 할아버지는 그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충분히 되고도 남을 만큼의 부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자가 그냥 잡혀 있게 내버려둔다는 게 정상적인 사고 방식일까? 납치범들 또한 그가 몸값을 거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자기 혈육이 곤경에 처해 있는데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냐고. 미국 최고의 부자라면서 자기 손자를 구하기 위해 겨우 그만큼의 돈도 못 낸다니 말이 되냐고 말이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역경에 처했을 경우 서로를 도우며 더욱 끈끈하고 가까워지기 마련이나 게티 가문은 그렇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과 이탈리아에 연줄이 있었기 때문에 늙은 게티는 사실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손자를 얼마든지 빠른 시일 내에 구출할 수 있었다. 게일은 "빅 폴이 가장 중요한 사업을 다루듯 납치 문제를 해결했더라면 우리 폴은 아마 24시간 내에 풀려났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책은 1995 <고통스러운 부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동명 영화 개봉에 맞춰 <올 더 머니: 세상의 모든 돈>으로 이름을 바꿔 재출간된 논픽션이다. J. 폴 게티 스스로왕조라고 불렀던 게티 가문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는 모든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작가는 그의 천문학적인 부가 구축된 과정과 그것이 다음 세대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그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추적한다. ‘007 시리즈의 작가 이언 플레밍의 생애를 다룬 책으로 유명한 저자 존 피어슨은 J. 폴 게티가 어머어마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과정과 수혜자들이 어째서 그토록 고통을 받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일화들을 소개한다. 세계 제일의 갑부가 그 거대한 부에 잠식되게 된 스토리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게티 가문 사람들과 J. 폴 게티에게 고용된 전문가들, 그의 다섯 명의 부인과 수많은 연인들을 비롯해서 실제 인물들의 다양한 시각을 충실히 소개하고 있어 실화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고 있지만, 사실 그 내용이란 것이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혀 들어보거나 겪지 못할 것들이라 허구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이긴 하다.

동명의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J. 폴 게티의 손자 폴 게티 3세의 천문학적인 몸값이 오간 납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 스토리는 대니 보일 감독이 10부작 TV 드라마로 촬영 중이기도 하다. 거장 리들리 스콧과 대니 보일을 모두 매료시킨 만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벌가 유괴사건을 다루고 있는 크라임 논픽션이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한 남자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인간이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어마어마한 부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부와 행복이 조화된 삶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극중 폴 게티 3세의 말처럼 '부자들은 사실 지구의 진정한 가난뱅이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영혼이 영샹실조에 걸려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마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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