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책이 네 대신 인생을 걸어가 주지는 않는단다. 네 발로 걷는 걸 잊어버리면 네 머릿속에 쌓인 지식은 낡은 지식으로 가득 찬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야. 누군가가 펼쳐주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골동품에 불과하게 되지."

나쓰키 린타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나서, 초등학교 무렵부터 할아버지와 계속 둘이 살아 왔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 가시고 나자, 고등학생인 린타로에게는 처음 보는 고모와 작은 고서점이 남겨졌다. 나쓰키 서점은 린타로에게 이른바 피난처이고 유일한 은신처였다. 학교도 자주 빼먹고, 늘상 집에 틀어박히기 일쑤인 그에게 서점은 책의 세계에 푹 빠져서 현실을 잊어 버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던 거다. 하지만 고모는 서점을 정리하고 자신과 같이 살자고 했고, 딱히 거절해야 할 명분을 찾지 못한 채 린타로는 정든 서점을 떠나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말을 하는 얼룩고양이가 나타난다. 고양이는 린타로에게 어느 장소에 책이 많이 갇혀 있는데, 책을 구하려면 네 힘이 필요하다고, 도와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인간의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까칠한 고양이와 책벌레 소년은 서점의 어두컴컴한 안쪽의 특별한 시공간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첫 번째 미궁에서는 모든 장르의 서적이 압도적인 질과 양으로 광대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서재에서, 읽은 책의 수로만 가치를 평가하는 지식인이 등장한다. 한 달에 100권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바쁘다는 그 학자는 매일 새로운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어 한 번 읽은 책은 두 번 다시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책들이 책장의 유리문 속에 갇혀 있고, 손잡이에는 무거운 자물쇠까지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1만권 읽은 사람보다 2만 권 읽은 사람이 더 가치가 있는 시대, 그리고 책을 읽는 것보다 소장하고 전시하는 걸 더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무언의 비판이 담겨 있는 그곳에서 린타로는 갇힌 책을 구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때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펼쳐지는 거란다. 기나긴 등산길을 다 올라가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야."

두 번째 미궁에서는 전 세계의 책을 모아 싹둑싹둑 잘라 버리는 학자가 등장한다. 그는 세상에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다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빨리 읽기 위한 연구를 한다며 책은 줄거리만 읽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세 번 째 미궁, 그리고 마지막 네 번 째 미궁까지... 과연 얼룩고양이와 린타로는 이 책의 미궁 속에서 만나게 되는 기이한 사람들로부터 책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말하는 고양이와 고등학생 소년, 소녀가 주인공인 모험이야기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경쾌하고 라이트 노블에 가까운 가벼운 느낌이다. '부조리에 가득 찬 세계에서 살아갈 때 가장 좋은 무기는 논리나 완력이 아니라 유머'라고 말하는 얼룩고양이의 말이 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이 작품은 성격도 어둡고, 친구도 별로 없으며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장점을 가진 것도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이 까칠한 고양이와 책의 미궁을 통과하면서 변화하는 성장 소설로도 훌륭하고, 희귀본이 가득한 고서점을 배경으로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와 외톨이 소년의 모험 소설로도 너무 멋지다. 그 설정만으로 서점과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책의 미궁은 여러 단계로 진행되고,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기이한 인물들의 책을 향한 왜곡된 애정이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놀랍기도 했다. 부분을 극대화시키고 과장해서 희화화해서 가볍게 보이도록 하고 있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책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이들에게도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책이란 존재하는 것만으론 단순한 종잇조각에 불과하지만, 읽는 사람이 생각을 담아 소중하게 간직한 책에는 마음이 깃들게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책에는 마음이 있다고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있는, 책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는, 세상의 모든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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