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이용한.한국고양이보호협회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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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죽는 것이 길고양이의 운명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들의 삶이 유난히 힘겨운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길어야 3년 안팎에 불과하다. 집고양이가 평균적으로 15년 안팎을 사는 반면, 길고양이의 수명은 그것은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서도 거의 매일 길고양이들을 만난다. 아이가 한참 동물에게 관심이 많을 시기라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게 되면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아이를 피해 훌쩍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곤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고양이와 인사를 나누고서 돌아서 가는데 아이가 말한다. "근데 야옹이 엄마는 어디갔어?"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기에도 추운 날씨에 혼자 다니는 고양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나보다. 길고양이들을 만날 때마다 생각한다. 제대로 쉴 곳은 있는지, 충분히 먹을 수는 있는지.. 저들의 집은 어디인지.. 저들은 왜 이런 날씨에 길거리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지.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서 가장 멸시받으며 사는 생명체가 있다면 바로 길고양이들일 것이다. 잘못된 속설 탓에 미움의 대상이 되어 왔고, 관절염에 효능이 있다는 근거 없는 미신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으며, 쓰레기봉투를 뜯고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잡혀가 안락사를 당하거나 텃밭을 파헤쳤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길고양이가 수난을 당하는 만큼 그들을 지키려는 활동이 활발한 나라도 우리나라라고 한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 캣대디들이 바로 그 최전선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거나, 학대에 맞서 감시자 노릇을 하기도 하며, TNR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민원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들은 고양이를 적대시하는 사람들과 길고양이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을 모색하는데, 이 책 또한 그 일환으로 쓰여졌다고 볼 수 있겠다.

 

 

고양이 작가이자 10년차 ‘캣대디’인 이용한 작가는 이 책에서 길고양이의 특징, 성장 과정, 고양이 용어 같은 개괄적인 부분을 쓰고, 고양이 보호 시민단체인 ‘한국고양이보호협회가 길고양이 구조, 치료, 포획 등 TNR과 의학적인 부분을 책임 집필했다. 거기에 더해 이용한 작가의 애정이 담긴 생동감 넘치는 길고양이 사진들과 일러스트레이터 봉지 작가의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길고양이에 대해서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수익금 일부는 길고양이 구조, 치료 지원에 쓰인다고 하는데, 내용도 그렇지만 책의 의도 또한 어딘지 뭉클한 부분이 있다. 길을 걷다 지나다니는 길고양이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한 번이라도 관심있게 지켜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아마 대부분 그러지 않을까 싶다.

 

 

길고양이를 입양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 고양이와의 교감과 성격 파악이다. 가끔 SNS나 인터넷 고양이 커뮤니티에는 아무런 준비나 교감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무작정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겠다는 글들이 올라오곤 한다. 야생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길고양이는 그들 나름의 자유와 질서가 있고, 길 위에서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수년에 걸친 길고양이 돌보기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를 전해주고 있다. 길고양이 밥 주기나 인도적인 TNR 방법, 길고양이를 입양하기 전 확인해야 할 사항들은 물론 길고양이로 인한 다툼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법과 최근 대두되고 있는 애니멀 호더 문제, 고양이 톡소플라즈마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다양한 정보와 전문 지식들이 담겨져 있다.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길고양이를 돌보며 마주하게 될 여러 상황에서 궁금한 점들이 질문, 답변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길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는 공문이 붙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양이에게 해로운 음식은 어떤 게 있느냐, 길고양이들을 보호소에 보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길고양이 사진 찍기, 고양이에 관한 명언들까지 수록되어 있어 자칫 무겁거나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까지 재미있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은 "지구에서 고양이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천국에서 당신의 처지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라고 했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인생에 고양이를 더하면 그 합은 무한대가 된다"고 했으며, 찰스 디킨스는 "고양이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고 말했다. 고양이에 관한 명언들을 보면 유독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샘 칼다의 <그 남자의 고양이>라는 책에서도 느꼈지만, 예술가들, 특히 작가들이 고양이를 편애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길고양이들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스티커와 길고양이 먹이 안내 스티커, 독극물 살포 경고 스티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잔인하게 동물을 죽이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위반에 해당되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2,000만원 이하에 처해지는 범법 행위입니다."

 

실제로 올해 3월부터 동물학대 시, 동물법 제8조 및 제46조 규정에 의해 이런 처벌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할까. 뉴스 보도에서 접하게 되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잔인하고 끔찍한 동물학대를 볼 때 마다 분노에 휩싸이곤 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바뀌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요즘은 수많은 고양이 집사와 고양이 콘텐츠가 생기면서 애묘인들이 늘어나 고양이에 대한 인식 자체도 놀랄 만큼 향상된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대다수의 길고양이 들은 우리나라에서 천대받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길고양이를 위해 길 위에서 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더불어, 그들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관심이 전혀 없었던 이들 조차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삶을 위해서, 더 많이 가진 인간들이 더 많이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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