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탄생 -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문명의 역사
알렉산더 데만트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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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측정하는 시간은 객관적이다. 원칙에 따르는 모든 이들이 같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주관적 시간이란 우리가 느끼는 시간을 말하며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동안, 또 신체의 작용을 통해 주관적 시간을 경험하며 자연의 흐름이나 사건의 패턴을 통해 외부적 시간을 경험한다. 이 시간은 우리 기억의 형태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저장되거나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항상 현존하며 멈출 수 없고 한 방향으로 저항할 수 없이 나아간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현재 시간이 새벽 1 55분인데, 런던은 오후 4 55, 벤쿠버는 오전 8 55, 두바이는 저녁 8 55분이다. 평소에는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자각하면서 살고 있지 못하지만, 이렇게 여러 나라의 동일 시간대를 보게 되면 새삼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이란 인간이 편의상으로 수치로 나눈 개념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달력의 연대기로만 볼 수만은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시간에 대한 정의는 각양각색인데, 시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는 쪽과 시간은 필요에 의해 정의된 거라는 쪽으로 대립되고 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시간을 인정하는 주체는 인간이지만 말이다. 현재의 시간 개념에 도달하기 위해 인류는 얼마나 먼 길을 여행해왔는가. 1년을 12개월로 나누기 시작한 것은 3천여 년이 넘었지만 달력에 주 단위로 표시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20년이 넘었다. 그 동안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 무수한 방법과 실험, 우회와 오류, 퇴행이 거듭 이루어져 온 것이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사회까지 3천여 년의 문명사 동안 '시간'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대하는 관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일상적인 계획을 비롯해 시간을 셈하는 방식, 7일을 한 주로 구성하고, 각 날에 요일을 붙이고, 달마다 이름을 붙이며, 달력을 만들고 절기와 나이 그리고 영원의 개념을 만든 것들 모두 고대의 유산에 포함된다고 저자인 알렉산더 데만트는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관심을 둘 만한 가치가 있는 방식으로 역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는데, 시간이라는 복잡한 관념을 고대의 문명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매혹적인 방식인 것 같다. 고대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조차도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현대사를 거의 반세기 동안 연구해온 역사학자로서 저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굉장히 쉽고 재미있는 역사서가 아니었나 싶다.

시계를 은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비단 세상과 유지 관리 체계 혹은 국가만이 아니다. 시간에 대한 다양한 비유적 표현도 역시 존재한다. 가령 '12 5분 전이야!'라는 표현은 때가 무르익었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위해 '종을 울리면' 그 사람은 죽을 것이다. 1940년에 쓴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종소리는 죽음의 신호였다. 막스 피콜로미니가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운이 좋은 이에게는 결코 종이 울리지 않는다.

시간이 항상 삶에 관한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미국인들의 신조나 의미 없는 일을 하거나 그저 빈둥거릴 때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린다고 한다거나, 괴테의 말처럼 시간은 하느님과 자연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는 식의 표현들 말이다. 우리가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 또한 너무도 익숙한 표현이라 공감이 되었다. '시간'이라는 단어의 언어적 역설은, 시간이 의인화되었으나 물체처럼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는 사실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간은 단위가 작아도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은데, 이는 종종 인생의 은유에도 적용된다. 하루 중의 시간이나 한 주의 요일, 계절이나 시대가 전체적으로 역사를 구분하는 단위가 되곤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루의 시간 혹은 매 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성경에서는 아침과 저녁의 비유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이후의 문학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주를 왜 7일로 정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달의 순환 주기가 28일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한 달의 순환을 반으로 나누게 되면 크게 네 시간으로 나눌 수 있게 되는데, 이 간격을 계산해보면 7일이자 한 주가 된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달력은 빵이나 꿀, 미네랄워터 같은 생필품뿐만 아니라 시장과 지급일, 등록과 마감일, 계약과 유효 기간 혹은 복역 기간, 직무수행 기간, 세금납기일 등 모든 영역을 망라해서 지배한다. 그 외에도 가장 긴 시간인 영원이라는 개념, 고대의 달력과 기독교의 달력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 진화, 한 해의 시간을 파악하게 되면서 구분된 사계절,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과 최장수 사례에 대한 기록, 인생의 단계 등등... '시간'이라는 테마를 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너무도 다양하고 광범위 해서 마치 '시간'을 초월한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 마저 들었다. 책 표지에 '시간에 대한 이야기 속에 빠져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어느 순간 그렇게 되고 만다. 하드커버 양장으로 700여 페이지의 책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의 가치는 그 이상일 거라는 기분이 드는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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