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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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항상 처음이 있는 법이지요, 페퍼 씨. 저의 제안을 기억해주세요.”

아서는 작별 인사를 하고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에도 메라 씨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음 행선지…… 참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추적해본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1년 전 오늘, 아서 페퍼의 아내 미리엄이 죽었다. 40여 년의 결혼 생활 끝에 이제 집에는 예순아홉의 아서 페퍼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딸인 루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혼자 살고 있었고, 아들인 댄은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다. 아서는 열쇠 수리공으로 자물쇠 영업을 하느라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만 하느라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고, 덕분에 자식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삐걱거렸다. 아서는 일주일 넘게 그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은 채, 집에서 규칙적인 일상을 지키려고 애쓰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유일하게 이웃집 여자 버나뎃만이 지난 몇 달간 집에서 만든 음식을 들고 찾아왔지만, 그는 대체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집에 가둔 채 칩거하며 시간을 보내다, 오늘 아내의 기일에야 겨우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러다 아내의 부츠 속에 들어 있는 조그만 상자 속에서 여러가지 모양의 참이 달려 있는 금팔찌를 발견한다. 코끼리, , ,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 여덟 개의 참들이 달려 있는 팔찌는 아무리 기억해봐도 생각나지 않는 물건이었다. 아서는 미리엄이 그 팔찌를 끼고 있는 걸 본 기억도, 그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없었던 것이다. 아서는 코끼리 참에 새겨진 글자와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어 보기로 하고, 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아서는 상실감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한 걸음으로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려고 했던 건데, 그녀의 옷장에서 발견한 낯선 팔찌 하나로 인해 당혹스럽기만 하다. 고민 끝에 그는 참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추적하는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집 밖으로 외출 조차 안 하던 그가 말이다. 어쩌면 아내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 '나를 만나기 전에 그녀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런던과 파리, 인도를 누비며 아내의 남자들을 찾아나선 아서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40년을 그녀와 함께했던 아서의 삶과 추억이 모두 와르르 무너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팔찌에 달린 참에 대한 사연 추적이 그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휘저어놓기 시작해서, 이 여정은 더 이상 미리엄이라는 존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서 자신의 문제가 되어 가기 시작한다.

 

"나도 잘 모르겠어." 아서가 한숨을 쉬었다. "팔찌를 찾기 전엔 꼭 그렇게 살고 있었고 미리엄도 내가 그렇게 살길 바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아내를 잘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것들, 내가 아는 걸 원치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야. 이런 것들을 비밀로 간직했다면, 또 뭘 감췄을까? 나한테 신의는 지켰을까? 나 때문에 아내가 따분하게 살진 않았을까? 아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내가 못하게 했을까?"

아서는 아내 미리암이 자신을 만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었는지 그녀의 시간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참에 담긴 사연들을 추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여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변하고 성장하는 것 같은 기분 마저 들었던 것이다. 아서는 그 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이 여행을 통해서 아내가 자신한테 말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너무도 역동적이고, 화려한 그녀의 과거 삶에 대해서 알아 가며 아서는 생각한다. '나 때문에 아내가 따분하게 살진 않았을까? 아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내가 못하게 했을까? 이런 것들을 비밀로 간직했다면, 또 뭘 감췄을까? 나한테 신의는 지켰을까' 의문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자신의 삶 전체가, 아내와 함께 해왔던 시간 전체가 부정되는 듯한 기분 마저 느끼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때로 사실이 아닌 경우가 있다. 내가 상대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기대하는 바가 상대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많은 것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생김새, 생일, 연락처, 취향, 습관 등등이 그 사람의 전부는 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이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맞나 싶어 상처를 받게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온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타인이 서로의 마음을 백퍼센트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우리는 알 수 없는 상대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어야만 한다. 나를 만나기 전, 내가 그를 알게 되기 전에 그가 살아온 삶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그리고 지나간 과거보다 함께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만 하니까. 극중 아서는 의심과 질투에서 비롯된 여정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진실들을 통해 허탈감과 공허감으로 무너져 내리는 대신,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나가기로 결정한다.

 

이 작품은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 없는 특별한 여행의 여정을 통해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모험을 보여주기도 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아들과 딸, 아버지, 그리고 아내와 남편의 모습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나 주인공 아서 페퍼가 대단한 모험가도, 괴팍하고 꼬장꼬장하기로 소문난 동네의 유명한 할아버지도 아닌, 튀는 데도, 모난 데도 없이 자신이 그어놓은 삶의 범주 안에서 조용하고 묵묵히 살아온 대체로 평범한 할아버지라는 점이 투박하지만 정겹고, 뭉클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주고 있다. 아서 페퍼의 황당무계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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