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소나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 악당은 끝까지 악당이란 겁니까?"

"그게 아냐. 살인을 실행에 옮기려면 아까 말한 대로 이성이니 윤리니 하는 경계선을 뛰어넘어야 해. 그런데 한 번 뛰어넘고 나면 담이 낮아지거든. 엄청난 일인 줄 알았던 범죄가 실은 그냥 잠깐 힘만 쓰면 되더라 하는 걸 알고 나면 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돼. 불쾌한 이야기지만 한 번 살인을 한 녀석은 아직 죽여 본 적이 없는 녀석보다 살인 행위에 대한 저항감이 줄어들어. 살인엔 면역성이 있는 거다."

이야기는 미코시바 레이지가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가 살인을 한 건지, 누구를, 어떤 이유로 죽게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이 장면에서는 그가 시체를 만지는 것이 두 번째 라는 것, 그리고 이전에 체포되었던 적이 있다는 사실만 드러나 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법률사무소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코시바 레이지는 변호사였던 것이다. 그것도 경찰과 검찰 사이에서는 물론,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른 범법자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변호사. 그는 최고의 실력자인 만큼 엄청난 수임료를 요구하며 고객의 돈을 제일 많이 뜯어내는 변호사로도 악명이 높았다.

 

강가에 유기된 시체를 발견하고 수사를 시작한 경찰들은 피해자의 신원이 미코시바가 맡은 보험금 살인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기자가 미코시바의 과거를 조사하던 흔적을 발견한다. 다름아닌 미코시바 레이지가 26년 전 엽기적인 살인으로 시체 배달부라고 불리던 열네 살 소년 살인범이었던 것이다. 의료 소년원에 수감되고 겨우 5년 만에 가퇴소했고, 3년 뒤 스물두 살 때 사법고시를 한 번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변호사 자격에 인격이란 항목도 없거니와, 소년원 수감 당시 개명을 했으니 그 동안 그의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것도 그럴 만했다. 취재 후 우연히 알게 된 사실로 공갈 협박하려던 기자, 잘 나가는 현재의 명성에 위협을 받을 만한 과거가 밝혀질 위기에 처한 살인 전력이 있는 변호사. 경찰의 수사 방향은 당연히 미코시바를 향하게 된다. 그는 과연 살인의 경험을 잊지 못하고 법을 이용할 줄 알게 된 살인마일까, 개과천선해서 속죄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변호사일까.

 

"전에도 말한 적 있지. 후회 따위는 하지 마라. 후회해 봤자 과거는 수복되지 않아. 사죄도 하지 마라. 잘못을 아무리 빌어도 잃어버린 생명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대신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 알겠냐. 이유가 뭐든 사람 하나를 죽였으면 그 녀석은 이미 악마다. 법이 용서해도, 세상 사람들이 잊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악마가 도로 사람이 되려면 계속해서 속죄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죽은 사람 몫까지 열심히 살아라. 절대로 편한 길을 택하지 마라. 상처투성이가 돼서 진흙탕을 기어 다니면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괴로워해라. 자기 안에 있는 짐승을 외면하지 말고 끊임없이 싸워라."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사건이 병행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카시바가 용의자로 지목된 기자 살인 사건과 그가 변호인으로서 맡고 있는 보험금 살인 사건. 그리고 그가 열네 살 소년이었을 때 벌였던 살인 사건과 그가 체포되어 수감되었던 과거의 이야기도 현재의 사건들과 연결되어 보여진다. 한 번 악인은 영원히 악인인가,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좀처럼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최강이지만 최악의 변호사인,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도 아니었고, 동기도 없이 그저 사람이 죽여 보고 싶었다는 소년은 얼핏 사이코패스의 원형처럼 보인다. 과연 선천적인 악인으로 태어난 것 같았던 그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작가는 이 작품의 첫 장면부터 그가 시체를 유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가 변호한 소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는 끊임없이 미카시바 주위를 맴돌며 그를 위협하고, 와타세와 고테가와 형사 역시 그를 향한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누가 봐도 미카시바는 나쁜 인물의 전형처럼 보인다. 한 가지 의문은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사건이 돈이든 명예든 얻을 것이 없어 보이는 재판이라는 것뿐인데,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 알게 되는 이 사건의 진상 또한 만만치가 않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 두 권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번 작품도 굉장히 기대가 되었는데, 전작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게 된 것 같다. 시리즈의 주인공 변호사를 과거 온 나라를 경악하게 했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설정하기란 결코 흔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에 나왔던 고테가와 형사와 그의 상사 와타세가 등장해 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있다. 법정 미스터리로서도 훌륭하고,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독보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서도 성공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어서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그 다음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