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집
소피 골드스타인 지음, 곽세라 옮김 / 팩토리나인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최고의 그래픽 노블에 수여하는이그나츠 어워드수상작이다. 어른들의 만화라고도 불리는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띤다. 만화책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보통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 지닌 깊이 있고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만화가 지닌 시각적 효과를 동시에 즐긴다는 것이 매력이다. 촘촘히 글자가 박힌 소설책보다는 눈의 피로도 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다.

 

 

그녀들의 나라에서는 비밀리에 범죄자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쓸모 있는 기술을 가진 전과자들에게 감옥에 갈 건지, 식민지 별에 파견되어 일할 건지 선택하게 한다는 거다. 그리고 식민지에 가기로 결정한 범죄자들은 환경에 맞게 유전자 변형을 시켜서 다시는 돌아올 생각을 못하도록 일종의 낙인을 찍는다. 그녀들이 교육을 하려는 소녀들 역시 남자처럼 눈이 네 개인 외계인들이다. 그녀들의 말을 할 줄 아는 소녀는 단 한 명이고, 나머지들은 그것 마저 못하지만 여자들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그들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여성들만 있는 곳에 있는 단 하나의 남성이라는 설정은, 그들 각자의 마음 속에 숨겨진 욕망을 자연스레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그들의 복잡미묘한 심리변화와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심플하지만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이미지들과 식민지 행성의 황량하고 독특한 풍경들은 굉장히 흡입력있는 서사를 전개한다. 그래서 단숨에 읽히는 이야기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자들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수상쩍은 남자는 원주민 여자들의 단순함을 노리고 그녀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푹 빠진 여자들에겐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제국에서 25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우주의 미개척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렇게 현대 사람들의 질투와 욕망, 그리고 배신과 집착을 그려낸 것처럼 리얼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 그리고 남자가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여자들. 섬뜩하도록 기괴한 환경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공포스럽게 변해간다. 정확한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설정도 없고, 기묘한 인물들과 독특한 상황 설정들 모두 기괴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래픽 노블은 흥미나 재미 위주로 만들어진 만화와 달리 소설이나 다큐멘터리처럼 탄탄한 스토리가 뒷받침됐으나 이를 화려한 만화로 풀어내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책들을 가리킨다. 대부분 그래픽 노블은 엑스맨, 아이언맨, 헐크,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을 통해 많이 만나왔을 것이다. 특히나 이들 작품들은 영화를 통해서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소설이 지닌 깊이 있고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만화가 지닌 시각적 효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히어로물이 가진 강점을 드러내기에 좋은 장르임에 틀림 없다.

 

한국과 일본 만화에 익숙한 우리 독자들에게 유럽·미국식 그래픽 노블의 빡빡한 지면 구성, 때론 실험적인 내용 같은 장르적 특성이 장벽으로 작용하긴 한다. 하지만 요즘은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읽고 자란 세대가 중년에 이르러 적극적 독자군으로 등장한데다 인기 높은 그래픽 노블 대부분은 현지에서 영화 등으로 제작되면서 이미지와 영상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접근 동기를 제공하고 있어 그래픽 노블 시장이 국내에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나 소피 골드스타인의 이 작품은 SF와 사이코섹슈얼 드라마의 만남이라는 점에 있어서도 매우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그래픽 노블을 즐겨 읽었던 사람들에게도 꽤나 인상적인 느낌을 줄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 자체가 아직 낯선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순하지만 강력하게 각인되는 메시지, 한 컷 한 컷에 담긴 놀라운 은유와 암시가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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