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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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커는 쉬지 않고 양동이째 들이붓는 것 같은 빗줄기 속에서 지지목에 기대선 채 어둠을 응시했다. 데커는 기만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하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질렀다.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의 선택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그 나쁜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멜빈 마스. 189센티미터, 104킬로그램, 지방이라고는 없는 단단한 바윗덩이 같은 몸을 지닌 남자. 내셔널 풋볼 리그 최고의 유망주였으나,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20년 째 수감 중이다. 그리고 마흔두 번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이제 단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온 자신의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나타난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은 그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을 하고, 그의 형 집행이 연기된다. 에이머스 데커,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 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은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5개월 동안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의 삶은 처참히 무너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범인이 스스로 경찰서에 들어와 자백을 한다. 전작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그와 관련된 사건 해결에 활약한 것을 계기로, 이번 작품에서 데커는 FBI에서 특수한 직책을 맡게 된다. 그리고 FBI 미제 수사 팀에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죽기 직전 드라마처럼 목숨을 건진 사형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데커는 순간, 과거 대학 시절 미식 축구 경기에서 멜빈 마스와 맞붙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감옥에서 20년이라니, 그것도 어쩌면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를 범죄 때문에. 게다가 진짜 살인범이 아니면 알 수 없을 세부 사항들을 알고 있는 다른 남자가 갑작스럽게 자백을 한 것은 데커의 가족 살인 사건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한때 풋볼 선수였으며, 가족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한참 뒤에 누군가 나타나 범죄를 고백하는 것까지 너무나 비슷한 운명의 두 사람. 데커는 운명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자백한 그 남자가 살인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마스의 경우가 완전히 같은 일을 직접 당해봤으니 말이다. 그는 FBI 미제 수사 팀에게 마스의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야겠다고 한다.

"놈들이 당신을 죽이겠다고 했잖아요."

"덕분에 희망을 얻었죠."

"빌어먹을, 제정신이에요?"

"그자들이 겁을 먹지 않았다면 왜 날 위협했겠어요?"

"당신은 겁을 먹어야 해요."

"이미 겁먹고 있어요. 미식축구 구장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겁을 먹었죠. 경찰이 된 후 순찰을 나갈 때도 그랬고요. 그렇다고 내가 내 일을 하는 걸 그 누구도 막을 순 없었어요."

매년 무죄로 밝혀져 석방되는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고한데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극중 데커의 말을 빌리자면 단 한 명이라도 너무 많다. 그리고 분명히 한 명은 넘을 테고 말이다. 이것은 분명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범죄 소설, 영화의 플롯으로 자주 사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 '억울함'이라는 테마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리게 만든다. 하지만 데이비드 발다치의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소재자체보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다. 전작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사고를 당했고,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댓가로 가지게 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됐다. 과잉기억증후군이란 뭘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어떤 기억을 찾으려고 할 때 머릿속의 영상 저장 장치를 켜면, 눈 앞에서 그 형상들이 보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마치 녹화된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 보기라도 하듯이. 그런 능력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도록 만든다. 거기에 더해 데커는 그것에 숫자와 색깔이 연결됐고, 시간도 그림처럼 눈에 보이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색깔들이 불쑬 불쑥 생각 속으로 끼어들고 사람이나 사물을 색깔로 인식한다. 그러니 당연히,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사형 직전의 순간에 목숨을 건진 마스는 세계 최고의 행운아인 것일까. 여전히 살해당한 가족과 그 장면을 잊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불운을 가진 데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숨겨진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있는 전개로 이 두툼한 페이지의 끝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초반부터 꽤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가 진행될수록 숨겨진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 지루할 틈이 없다. 거듭되는 반전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너무나 비슷한 운명을 가졌지만 완전히 다른 성향의 흑인과 백인, 두 남자가 굉장히 어렵게, 천천히 우정을 나누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더욱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을 선사한다. 데커와 마스가 결국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그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 매끈하게 잘 빠진 스릴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다니, 진정 완벽한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마자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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