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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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누운 채로 몸을 뒤척였다. 생각을 딴 데로 돌려보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메리베스가 범인 추적을 위해 중무장한 두 남자와 산으로 들어온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좋은 사람이 돼 나쁜 사람을 쫓고 싶다는 조의 어린 시절 꿈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흥분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왠지 메리베스는 이런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리 공들여 설명해도.

 

 

오픈 시즌이란 특정 동물에 한해 공식적으로 정부가 사냥을 허가하는 기간을 말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수렵감시관이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의 배경은 미국 중서부, 광활하고 적막한 와이오밍 주의 대자연이다. 멸종위기종 보호라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는 있으며, 자연을 주요 제제로 삼고 있다고 해서 '에코스릴러'라고 부른다. 게다가 조 피킷 시리즈는 전세계 27개국 출간, 미국 내에서만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오픈 시즌> 이래 십칠 년 동안 열일곱 권의 작품이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이다. 첫 작품인 <오픈 시즌> 2001년에 출간된 이래, 매년 꾸준히 시리즈가 한 편씩 출간되고 있으며, 최신작 <악순환>은 바로 올해 3월에 출간되었으니 여전히 진행 중인 작품이기도 하다. 리 차일드는 이 시리즈에 대해 장르소설과 서부극의 환상적인 조화라고 말했는데, 나로서는 에코스릴러라는 장르 자체도 낯선 데다 서부극이라고 하면 바로 연상되는 이미지 덕분에 도무지 스릴러라는 장르와의 조합이 연상되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만나보니, 왜 이 시리즈를 2000년대 가장 성공적인 스릴러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조 피킷만은 예외일 거야. 자넨 깨끗하고 순수하고 선하니까."

 

가장 흥미로운 건 바로 조 피킷이라는 캐릭터이다. 그는 거친 남자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수렵감시관일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제 막 수렵 감시관이 된지 일주일 된 신참이었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벌써 유명인사였는데, 이유인 즉 허가 없이 낚시했다고 와이오밍 주지사를 체포했기 때문이다. 조는 일을 망칠 때면 아주 제대로, 공개적으로 망치곤 했는데, 오래도록 바랐던 꿈의 직장인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도 면접 날짜를 달력에 잘못 적어서 기회를 제대로 날릴 뻔 하기도 했다. 그와 아내인 메리베스는 아직도 그 일을 돌대가리 같은 짓이라 부른다. 지금은 아직 사슴 사냥 시즌이 시작되기 넉 달전이었고, 조는 한 주민의 밀렵 현장을 적발한다. 남자는 캠핑 장비점 주인인 오티 킬리였고, 그는 눈감고 넘어가주기를 바랬지만 조는 원칙대로 딱지를 끊고 범칙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오티는 조의 총을 빼앗아 그를 협박했고, 몇 개월 뒤 신참 수렵감시관이 지역 주민에게 무기를 빼앗겼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결국 그 사건 또한 조의 인사 기록에 영영 오점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조와 오티 사이에 그런 일이 있고 얼마 뒤, 조의 집 뒤뜰에서 오티가 시체로 발견된다.

 

 

"동물은 죽게 돼 있네, ." 번이 말했다. "모든 종은 결국 멸종할 운명이고. 물고기가 뭍으로 올라와 폐로 숨을 쉬기 시작하기 전부터 그래왔잖나.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고 말이야.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죽일지, 우리가 어떻게 조정할 수 있겠나. 우리는 현실 세계와 자연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전능하지 않다네. 지구상에 있는 핵폭탄을 모두 합쳐도 파괴력은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의 만분의 일에도 못 미쳐. 인간은 그렇게 작고 연약한 존재야. 인간에게는 보호할 능력도 창조할 능력도 없네. 그저 그게 가능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 뿐이지. 멸종 위기에 처한 새를 보호하는 건 진화를 막는 거나 다름없네. 한낱 인간으로서 그런 짓을 하면 되겟나?" 번이 말했다. "그건 신의 영역 아닌가."

 

 

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두 가지 뿐이었다. 자기 가족과 직업. 그는 지금껏 둘을 분리하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오티 킬리의 시체가 자신의 집에서 발견됨으로써 그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버리고 만다. 살인 사건은 두 아이와 아내에게는 잊고 싶은 악몽으로 남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범인 추적을 위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좋은 사람이 되어 나쁜 사람을 쫓고 싶다는 그의 어린 시절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되지만, 분석실로 보낸 증거는 사라지고, 누군가에 의해 사건이 대충 수사되어 그냥 덮이고 말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는 살인 사건의 이면에 뭔가 있음을 직감하고 내막을 캐기 시작하지만, 과거의 실수를 빌미로 정직 처분을 받기에 이른다. 조는 식구들을 실망시키게 되어 죄책감이 들었고, 장시간 노동에도 낮은 봉급에 만족하며 정부의 한심한 관료주의에 시달려온 인생의 한 토막이 끝나 안도했으며, 남들의 졸 노릇만 해왔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주어진 임무를 청렴하고 성실히 수행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그의 믿음은 크게 흔들리게 되고, 힘들게 결심한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희망도 잃어버리고, 그의 가족들은 길에 나앉게 생긴다. , 이런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현실을 헤쳐 나갈 것인가.

 

"당신이 이 모든 사건에 연루됐다는 게 밝혀지면 우리는 여기서 화끈한 서부극을 찍게 될 겁니다."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단순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정의감에 불타는 주인공 캐릭터는 그다지 흔하지 않다. 오히려 약간은 법을 어기거나, 제멋대로 하더라도, 사건에 해결하는 영웅 캐릭터가 박수를 받는 장르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조 피킷은 어떻게 보면 다소 고지식하다고 생각될 만큼 꿋꿋하게, 융통성 없이 원칙을 고수하며 일을 처리하고, 아내와 아이들만 생각하는 매우 가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선발 시험에 겨우 합격했을 만큼 신체적 능력도 부족하고, 사건을 뒤쫓는다지만 별다른 추리력도 없어 보인다. 서부극의 배경에서 거친 마초의 성격과 외모를 가지지 않은 남자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스릴러라니, 놀랍도록 신선했다. 시리즈 히어로다운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바로 그 부분에서 오는 묘한 매력이 눈길을 사로 잡아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고, 그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꼭 피가 튀고 살이 찢겨야 스릴러가 아니라는 걸 이 작품이 증명한다.는 언론의 평처럼, 이 작품은 긴장감을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힘으로 완벽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조 피킷의 팬이 되었다. 부디 이 시리즈가 하나씩 차례로 출간되어 열 입곤 모두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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