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해들러 가족의 죽음에 대해 뭔가 명확한 게 나오면 그때 떠날 겁니다." 포크가 말했다. "그전에는 안 떠나요."

"이건 너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가족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요? 내 생각에 이런 일에는 관련 없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뭔가 이 문제에 대해서 강한 주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니까 당신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있겠군요. 공식적으로 해보자고요. 어떻게 생각해요?"

친구 루크의 비극적인 사건 소식을 접한, 에런 포크는 2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루크는 아내와 여섯 살짜리 아들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데, 갓난아기인 딸은 그 비극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포크를 친구의 장례식에 초대한 것은 그의 아버지 제리였다. 현재 벌어진 일가족 살인 사건은 20여 년 전 과거에 있었던 한 소녀의 죽음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당시 강에 빠져서 익사한 엘리라는 소녀의 죽음에 대한 용의자로 그녀와 가까웠던 포크가 의심되었지만, 그 시간에 포크와 함께 있었다고 증언한 루크의 덕분에 알리바이가 만들어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크의 아버지와 포크의 아버지는 그들 중 한 명이었고 말이다.

루크는 거짓말을 했어. 너도 거짓말을 했지. 장례식에 와라.

그 사건으로 인해 포크와 아버지는 마을을 떠나야 했지만,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아들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루크의 아버지가 묻는다. 루크가 전에도 사람을 죽였던 적이 있느냐고. 자신은 루크가 가족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금융범죄 전문 수사관인 포크는 제리의 부탁으로 마을의 라코 경관과 함께 사건의 진상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미제로 남은 과거의 그 사건을 잊은 적 없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들에게 냉담하게 협조하지 않고, 급기야 포크에게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과연 루크는 스스로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일까? 이 사건은 과거의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일까? 대체 20년 전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며, 루크와 포크의 거짓말은 어떻게 된 걸까. 작은 마을에 안개처럼 퍼져가는 비밀들은 점점 무게를 더해가고, 백 년 만에 찾아온 사상 최악의 이상기온으로 바싹 말라가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그것은 점점 더 견고하게 벽을 쌓기 시작한다.

"그 여자애가 죽은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없어요. 아버지, 없다고요. 당연히 내가 한 짓이 아니에요."

에런은 자신의 심장이 아버지가 움켜쥔 손아귀에 닿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는 트럭의 짐칸에서 덜커덕거리고 삐걱거리는 그들의 가장 소중한 물건들을 생각하고 루크 그리고 그레천과 서둘러 나눈 작별을 생각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엘리와 다시 나타날까 봐 그가 지금도 뒷유리를 통해 살피고 있는 디컨을 생각했다. 그는 분노의 전율을 느꼈고 아버지의 손을 확 비틀어 떼어내려고 시도했다.

"안 그랬어요. 맙소사, 어떻게 그런 걸 저한테 물어보실 수가 있어요?"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때로 사실이 아닌 경우가 있다. 내가 상대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기대하는 바가 상대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가끔 우리를 완벽하게 배신하곤 하니 말이다. 그 사람의 말투, 행동, 평상시 습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이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포크는 루크의 거짓말이 자신을 위해서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때, 아직 기회가 있었을 때 그에게 한번쯤 제대로 물었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엘리가 죽던 날 오후 루크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지만 이미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루크는 영원히 그에게 답을 들려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그것은 가끔 감당하지 못할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저 잠시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그저 다른 데 신경을 조금 더 썼을 뿐인데, 그저 내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것 뿐인데.... 작은 순간의 이기심이 엄청난 댓가를 치뤄야만 하는 사건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은 아마존에서 엄청난 화제였던 작품으로, 출간 전 원고상태에서 영화화가 이미 확정된 제인 하퍼의 데뷔작이다. 작은 마을의 소문이 가져온 참혹한 피해를 섬세하고 날카롭게 그려나가면서 그 속에서 인간이 지닌 죄의식과 후회의 본질을 매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20년 전의 살인사건과 현재의 살인사건이 교차 서술되며 긴장감을 부여하고, 마을 사람들 제각각이 가지고 있는 비밀들의 무게가 점점 의심을 증폭시켜나가면서 페이지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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