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문제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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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는 사람을 보는 눈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모든 가정이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조금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다들 어른이네."

나오와 둘이서 감탄했다. 자극도 되고 격려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서른두 살의 회사원 준이치는 이제 결혼한 지 두 달밖에 안된 신혼인데,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결혼 전 오랜 기간 혼자 독립해서 지내서 그런지, 휴일에도 꼼꼼하게 청소며 집안일을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요리들을 정성 들여 준비하며, 야근하고 늦게 들어가도 매번 밤참을 만들어 내오는 완벽한 아내가 어쩐지 부담스럽기만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야근 핑계를 대고 동료들과 마작을 하거나, 집 근처 커피숍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아지는데, 어느 날 아내가 그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들 신혼 부부는 과연 위기를 어떻게 넘기게 될까. 임신 6개월인 주부 메구미는 남편 회사 소프트볼 대회에 응원 차 갔다가, 남편이 동료들로부터 찬밥신세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를 가지면서 자신은 회사를 그만둬서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완전히 기대고 있는 데다, 곧 아이까지 태어나는 상황이라 그녀는 남편이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남편이 회사에서 실제로 어떤 상황에 놓인 것일지 상상하며, 점심은 누구와 먹을지, 상사에게 혼나고 있지는 않을지, 동료들에게 험담을 듣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가 내린 비장의 방법은.. 소박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녀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마음이 점차 남편의 회사 동료들 마음까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십 년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온 두 남녀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벌어지게 되는 신혼 생활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들이 겪어왔던 샐러리맨의 애환, 부모의 이혼을 눈치 채고 고민하는 사춘기 딸의 마음, 도시에 사는 신혼부부가 명절이 되어 각자의 고향에 다녀와야 하는 귀성 전쟁과 남편이 유명 소설가라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전업주부의 정체성 찾기 등... 일본 작가가 그리고 있는 가정사들이지만, 한국의 어느 가정과 견주어도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삶의 편린들이다.

미나코는 의논 상대가 필요했다. 혼자 껴안고 있기에는 너무 버거운 문제였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다. 친정 엄마에게 말했다가는 걱정하느라 바싹바싹 마를 것이다. 동네 엄마들도 안 된다. 몰려다니기는 하지만 우정은 없다. 입방아거리를 제공할 뿐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관계가 소원해지고 말았다. 동창회는 5년 전에 나간 게 마지막이다.

이런 일이 닥치고 보니 전업 주부는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락을 함께할 전우가 없다.

하여간 힘을 내는 수밖에 없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다. 미나코는 아자! 하고 힘차게 외쳤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각 다르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그 유명한 문구를 굳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우리네 삶은 사실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불행해하는 순간들로 채워진다. 타인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걸 참지 못해 부부가 이혼을 하기도 하고, 부자 사이가 냉랭해지기도 하며, 고부 관계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당사자에게는 죽을 만큼 힘든 일이지만, 남이 보기에는 그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 집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특유의 해학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여러 가정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사소한 문제들까지 예리하게 짚어내는지, 실제 작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이들의 이야기는 격하게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다. 남편이 잘 나갈수록 집안일만 하던 아내가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어느 날 갑자기 UFO와 교신했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남편이 알고 보니 직장에서 곤란에 처해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서로의 고향이 먼 거리만큼이나 성격도 가풍도 달라 귀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신혼 부부의 고민도 너무 있을 법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나름 진지한 주제들에 대해서 심각함보다는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 시선으로 그려내는데 이 작품만의 장점이 있다. 비슷한 상황에 한 번이라도 처해 본 적이 있다면, 혹은 이웃이나 가족들이 유사한 고민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면 더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말이다. 거기다 심각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들의 귀여운 고민에 슬그머니 미소 짓게 되는 순간도 있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얻게 되는 은근한 위로도 있다. 이런 저런 가정의 대소사들로 인해 지치고 스트레스 받는 이들에게,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당신네 집 문제도 결국 우리 집 문제와 다르지 않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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