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왔을 때는 여름이 아직도 한참 계속되겠다 싶었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어느 틈에 가을이 찾아왔다는 걸 알았다.

저녁 바람은 선선하고, 역 앞 로터리 원형 화단에는 코스모스 꽃이 한들거렸다. 소담스레 핀 코스모스 꽃 속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가 서 있었다. 원피스 군데군데에 해바라기 꽃이 피어 있다. 어디까지나 모티프니까, 색은 하늘색.

, 계속 여기 있었구나.............내 그림자는 하나뿐이었지만, 나는 둘이 전철을 기다렸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죽은 딸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남편과 아내에게는 5년 동안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다. 그들 부부에게는 아직 지겹도록 긴 인생이 남아 있지만, 산다는 것에 흥미가 없어지고, 체력과 기력이 떨어지는데도 아무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날아온 기모노 카탈로그를 보게 되고, 죽은 딸을 대신해 성인식에 참석하기로 한다. 열다섯 살에 죽은 딸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이제 곧 성년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스무 살 젊음들과 함께 서기엔 그들의 나이를 속일 수가 없고, 그들 부부는 그곳에서 딸의 친구들까지 만나게 된다. 자신의 딸은 여전히 열다섯 살인데, 남의 딸이 성장한 모습을 보는 기분이란 어떨까.

결혼 3년차인 쇼코는 아이가 태어난 지금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애와 결혼은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번 일을 핑계로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일에도 지치고,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며 육아에 매달려 있는 것도 힘들고, 남편이 거의 집에 없는데도 가까이 사는 시어머니는 툭하면 나타나 잔소리를 해댄다. 좁은 아파트에서 혼자 칭얼칭얼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자신도 밖에 나가고 싶고, 회사에 다시 나가 일하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다 결국 불만이 극에 달해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짐을 싸 집을 나오고 만다. 그런데, 그날부터 이름도 없는 낯선 주소의 메일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남편이 장난을 한 것이라 여겨 화가 났는데, 남편은 그 일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했고, 쇼코는 의문스러운 옛 말투의 그 메일이 과거에서 오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작품에 실린 여섯 개의 단편은 모두 가족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5년 전 죽을 딸을 잊지 못하는 부부, 오랫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화해하게 된 딸, 결혼을 앞두고 해변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 이발소를 찾아온 청년, 남편에게 실망해 친정으로 돌아온 여자의 이야기 등등... 익숙한 듯 보이지만 특별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이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담백하고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이야기는 아련하게 남아있는 먼 기억들을 불러오며 따뜻한 향수를 불러오기도 한다.

거울에 공을 들인 것은 이유가 있어서였습니다. 손님이 바다를 바라보며 이발할 수 있다는 건 구실이지, 사실은 저 자신을 위한 거였어요.

이발사는 늘 커다란 거울 앞에서 일하는 직업이죠. 손님에게 언제나 모습을 보여야 하는 장사입니다.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발하는 동안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제 얼굴에는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내 얼굴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당신 살인자지, 하고 누가 손가락질할 까봐 두려워서.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나의 맨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감정을 꾸미거나 속일 필요가 전혀 없는 그런 관계.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계'라는 걸 맺게 되는 곳이 바로 집이란 걸 떠올려보자면,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서툰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가족 관계를 통해서 앞으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맺게 될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가족 관계에 따라 앞으로 수많은 인간관계가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했다거나, 가족에게서 거부당한 적이 있다거나 할 경우 자존 감이 낮아지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슷한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아끼고 보듬고 사랑을 키워야 할 가정이 잘못하면 불행을 키우는 씨앗을 만들어내는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 지긋지긋하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이 작품은 가끔은 고통스럽고, 어쩔 땐 짜증나고, 꼴도 보기 싫고, 미울지라도, 가족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언젠가는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믿고 싶어지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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