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의 사람들
발레리아 루이셀리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시간을 중첩시키는 일을 하는 소설가를 만났다. 소설을 쓰는 일이 시간을 중첩시키는 일이라니, 대체 무슨 말일까 싶었다. 시간이 겹치거나 포개어진다는 건, 여러 개의 시공간이 뒤섞인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현재에 또 다른 시간이 존재한다는 말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무릇 소설은 긴 호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소설가들이 바라는 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모두들 긴 호흡이 어쩌고저쩌고하며 떠든다. 나에게는 갓난아이와 중간 아이가 있다. 두 아이들 때문에 숨 쉴 틈조차 없다. 내 글은 모두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숨이 가쁘다.

여자는 갓난아이와 중간아이, 그리고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두 아이들이 잠이 든 깊은 밤에 글을 쓰고 있다. 예전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몸이 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렇게 밖에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다가도 여유만 생기면 언제나 소설을 썼다.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였으니 말이다. 남편은 주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지만, 티비 광고 문안이나 시를 쓰기도 한다. 그녀가 현재 쓰고 있는 글은 자신이 과거 뉴욕의 어느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다. 번역가 겸 도서 검토 위원으로 일하던 그 시절, 시간 속의 관계와 상황들을 그리고 있으나, 물론 그것이 모두 자전적인 것에서 기인하는지, 어느 정도의 허구가 섞여 있는지, 혹은 모두 상상 속의 이야기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그녀의 글을 수시로 훔쳐 읽고 과거사를 의심하는 남편처럼, 아마도 그것이 실제로 그녀의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일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아이들을 돌보는 가운데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매달리는 여자의 현재와, 그녀가 쓰고 있는 소설이 극중극 형태로 교차 진행된다. 소설 속 그녀가 출판사에서 하던 일은 당시 미국 문단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주옥 같은 외국 작품을 발굴해 내는 것이었다. 문학이 설 자리를 읽어버린 비참한 위상이 단적으로 그려지는 그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한 작가를 발견하게 된다. 파멸과 붕괴에 맞서기 위해 글을 썼던 힐베르토 오웬이라는 작가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멕시코의 무명 시인 힐베르토 오웬의 그것으로 펼쳐진다. 그녀가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다니면서 그의 글을 읽고, 중요한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 나뭇가지에 붙이면서 여러 계열의 시간과 공간이 그만큼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에즈라 파운드... 그렇게 예술가 유령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삶 속에서 그들은 무중력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널찍한 집에서 우리 식구들은 가끔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그런데 보통 숨바꼭질과는 놀이 방식이 좀 다르다. 일단 내가 숨으면, 다른 식구들이 찾아야 하는 식이다. 숨바꼭질 놀이는 때로는 몇 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나는 벽장 안에 숨어 다른 삶, 그러니까 나의 것이되 동시에 나의 것이 아닌 어떤 삶에 관해 장문의 글을 쓴다. 내가 숨어 있다는 걸 기억해낸 사람이 나를 찾아내고, 중간 아이가 '찾았다!'라고 소리칠 때까지 놀이는 계속된다

한편 멕시코 영사관에서 서기로 일하는 오웬은 병마와 고독, 좌절과 가난에 시달리며 생의 남은 나날을 버텨내고 있다. 이야기가 오웬의 목소리로 전개되면서 시간은 192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여자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오웬의 유령을 만나게 되고, 오웬은 지하철에서 빨간색 외투에 다크 서클이 짙은 미지의 여성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지하철을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설정한 것 또한 굉장히 매혹적이다. 현실과 과거의 시간이 겹쳐지고, 실재와 허구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그려내고 있었다. 현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작품 속의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더니, 그 속의 인물을 다시 바깥으로 끄집어내서 유령들이 실재하는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만들다니, 놀랍기 그지 없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하면 보르헤스, 움베르토 에코, 카프카,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마르케스 등이 먼저 떠오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환상의 요소를 가미한 작품도 있고, 언어와 구성에 실험성을 도입한 작품도 있고,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해서 현실에 꿈과 마술적 요소를 혼합한 작품들도 있지만, 사실 내게는 좀 만만치 않은 작가들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멕시코의 작가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첫 번째 소설인 이 작품은, 기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서사에서 많이 벗어나 있고, 쓰인 방식 역시나 어렵지 않게 쉽게 다가와 신선했다. 그러면서도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해 매우 평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매혹적이기도 했고 말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신선한 목소리'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내게도 굉장히 신선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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