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드의 영역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평행우주라는 말을 다들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우주에 지구만 생명체가 존재할 리 없으며, 평행하는 다양한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절대 갈 수 없는 것이 또한 평행선이다. 그것은 만날 수 없는 선이니 말이다. 평행이란 나란히 가는 것이기에 존재해도 서로 만날 수 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다른 차원의 자신이나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물론 평행하는 우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도피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진짜 평행우주가 존재하고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두 세계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쓰쓰이 야스타카의 신작은 바로 그것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농담 같은 이야기이다.

가게 안에 빵 굽는 냄새가 가득 차고 반지하층에서부터 그 고소한 향이 거리로 흘러 나가 행인들이 고개를 살짝 쳐들고 코를 움찔거리는 개점 직전 시각, 시마가 반지하층에서 커다란 쟁반에 담아 매장으로 옮긴 바게트를 보고 마사히코는 낯이 창백해지고 가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매일 보던 동물 모양의 작은 바게트 수십 개 위에 단 하나, 떡 하니 놓여 있는 바게트가 인간의 한쪽 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게트로 구워진 여성의 오른팔 모양은 실물 크기에 길이는 40센티 정도, 팔꿈치 조금 위부터 곧게 편 손가락 끝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강변 둔치에서 미대 학생이 여성의 오른팔을 발견한다. 어깨부터 절단된 여성의 팔은 깨끗하게 절단된 것도 아니고 난폭하게 뜯겨진 것도 아니고 어깨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인다.  사건을 조사하러 현장에 나온 경찰과 대화하는 감식반의 쓰쓰미는 그것을 이렇게 평가한다. '아마도 하느님이 아담과 함께 만든 이브의 팔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여기에는 평범한 여성의 팔에서 엿보이는 보편적 에로티시즘이 있다', 팔에 관한 자신의 의견 피력을 무려 두 페이지 가깝게 늘어놓는다. 손 페티시스트가 아닌가 싶을 만큼 말이다. 평범한 미스터리처럼 시작한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살해된 여성이 누구인가. 대체 왜 이런 범죄를 저질렀으며,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가.는 이 작품에서 중요하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여성의 오른팔' 바로 그 자체가 의미심장한 것이다.

뒤이어 한쪽 다리가 발견되지만, 행방 불명 된 여성 중에 그런 팔이나 다리에 어울리는 피해자는 없었고, 수사에 더 이상의 진척이 없을 때 경찰서로 기이한 메일과 투서가 들어온다. 아트베이커리라는 빵집에서 여성의 팔을 본뜬 바게트가 판매되고 있는데 그것이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성의 오른팔과 매우 흡사하다는 주장이었다. 아트베이커리는 미대생을 알바로 고용해 동물 모양의 바게트를 파는 걸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알바생 두 명이 휴가를 가면서 임시로 고용된 미대생이 그저 재미로 팔 모양 바게뜨를 만들게 되었다. 그것을 단골이었던 유이노 교수가 보고는 극찬을 하며 사가서 신문 칼럼에 그 이야기를 기고하면서 팔 바게뜨가 유명해진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찾아갔을 때는, 그것을 만들었던 미대생이 알바를 그만두고 연락이 안 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갑자기 유이노 교수가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자신을 신 혹은 그것에 가까운 존재라고 주장하며, 무슨 일이든 뭐든지 안다고 예언 비슷한 말을 하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글쎄 말했잖아. 나는 뭐든지 안다고."

"꼭 하느님 같네요."

오가와 요시미는 절반은 경악하고 절반은 야유하는 투로, 그리고 자신의 실책을 까밝힌 데 대한 분노까지 보태서 애써 웃는 낯을 꾸미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은 아니야."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그것에 가까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신이라며, 유이노 교수의 몸은 단지 빌렸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공원에 모이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 되고, 언론에서도 취재를 하러 오는 등 일대 난리가 난다. 그러다 한 남자를 가볍게 건드려 뇌타박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고, 그 청년이 다음 날 멀쩡하게 일어났지만 일이 커져 재판에까지 이르게 된다. 자신을 신이라고 자처하는 과대망상에 빠진 이상한 남자와 벌이는 이상한 재판, 피고인에 대한 상해죄는 오직 그가 법정에 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되었든 법정은 그가 정신이상이라고 밝혀지지 않는 이상 그에게 구형을 해야 한다. 황당무계한 세계관처럼 들리는 것을 너무도 진지하게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이 이상한 이야기는 하나의 농담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굉장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힘도 느껴진다.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외에도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실제 과학자들이 말하는 평행 우주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의 끝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 어두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신비로운 풍경 속에 존재하는 세계, 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공간 안에 있는 세계.

"나나 당신들이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가능세계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이야기 말이야. 여기가 단지 소설 속의 세계라고 하면 어떨까. 독자가 보자면 나나 당신들이 있는 이 세계는 가능세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겠지. 당신들도 알잖아. 여기가 소설 속의 세계라는 것을."

"역으로 말하면, 우리 세계에서 보자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세계야말로 가능세계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세계가 다른 세계와 공간적으로 겹쳐져 있다는 설정 자체가 매혹적이다. 이 작품의 서두에 등장하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출현한 이유에 대해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대목도 매우 흥미롭고 말이다. 한쪽 세계에만 존재하는 누군가가 다른 한쪽 세계에 등장하면서 변수가 발생하고, 그 결과 이 모든 혼란이 생겼다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논리가 모두 설득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발상 자체는 흥미롭기 그지 없다. 5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내내, 전에 없는 난센스와 블랙 유머가 작렬하는 작품들로 '쓰쓰이스트'라고 일컬어지는 열광적인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SF 작가답게, 자신의 최고 걸작이며 아마도 마지막 장편일거라는 말에 부합하듯이 이 짧은 작품 안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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