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 노트
tvN [내게 남은 48시간] 제작팀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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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날 당신에게 죽음이 배달된다면? 게다가 오늘은 바로 당신이 죽기 이틀 전이라면 말이다.

앞으로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48시간이라면, 그렇다면 지금 당장 뭘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마지막을 꿈꿔야 할까.

'가상 죽음 배달'이라는 이상하고 오싹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tvN의 프로그램 [내게 남은 48시간 : 웰다잉 리얼리티]이라는 방송이었는데, 가상 죽음을 소재로 게스트가 출연해서 48시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남은 인생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방송을 보면서, 처음 죽음을 배달받는 그들의 모습이 (비록 연출된 것일지라도)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결국 언젠가는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일이니 말이다.

 

아무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죽을 날짜와 시간을 알게 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숱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혹은 소설 속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인물들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우리는 참 많이 만나 왔다. 하지만 그건 모두 '남의 일'이었고, 정작 '내게 닥친 일'이 아니었기에, 그저 강건너 불구경 하듯 무심히 보아왔던 것도 사실일테고 말이다. 그 어떤 불행도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만 않다면, 사람들은 또 아무렇지 않게 순간을 살아내는 존재들이니까.

이 책 <해피 엔딩 노트>는 방송에 출연한 그들이 48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의미 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 계획을 적어 내려가고,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들도 작성했던 '엔딩 노트'이기도 하다. 나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돌아보며 다양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며 소소한 행복들을 일깨워주는 노트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를 위한 처방전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요? 내 몸과 영혼을 위한 좋은 일, 지금부터 시작해봐요)

'나를 위한' 이라는 대목부터 참 머쓱해졌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를 쫓아다니고, 아이를 위해서 뭔가를 챙기고, 그리고 남는 시간을 쪼개어 집안 일을 해치우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밥을 차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밤중이 되어 버리는 나날을 벌써 이 년 넘게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도 바삐 사느라 나를 돌아볼 여유도, 거울 한번 제대로 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으니, '내 몸과 영혼을 위한' 일 따위야 내 삶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어떻게든 하루에 몇 자라도 책을 읽으려고 애쓰는 것이 그나마 나를 지탱하는 것이었지만, 사실 그마저도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는 나날이기도 했고 말이다.

내일부터라도, 나를 위해서 하루에 단 몇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보고 싶다.

 

분노 유발자들 (어처구니없는 직장 상사, 예의 없는 이웃, 환경오염. 분노 유발자들 속에서 살아남는 나만의 생존수칙이 있나요?)

 

하핫.. 분노 유발자들을 기재하는 페이지에 이르고 나니 그저 유쾌한 기분마저 든다. 지난 연말까지 나의 분노 지수는 그야말로 최대 게이지에 달했고,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 지수 역시 폭발할 지경에 이르른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누군가에게 풀지 못해 그야 말로 화병이 생길 지경이다보니, 잦은 두통과 소화 불량으로 고생하기도 했었다. 여기 노트에 그것들을 몇자 적기만 해도 화가 어느 정도는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뭐, 말 다했지. 올해에는 분노를 다스리는 나만의 생존방법을 좀 진지하게 강구해봐야 할 것 같다.

살면서 내가 가지 못했던 길에 후회와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때 당당히 아니라고 말할 걸, 그때 왜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자각은 꼭 지나가고 나서야 들게 마련이니 말이다. 가끔은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고, 육아와 가사일 때문에 직장도 그만둬버린 내 삶에 더 이상의 선택은 없을 것 같고, 이제 갈림길 앞에 설 일은 생기지 않을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트에 기재되어 있는 것처럼 마냥 미련만 남기고 있을 게 아니라, 그때 내가 그랬더라면 뭐가 달라졌을까를 구체적으로 적으면서 정리를 하게 된다면, 그럼 후회라는 감정도 좀 더 옅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분도 든다. 뭐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실제보다 더 커지고 부풀어져서 기억 속에 저장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한때 임종체험이 유행처럼 매스컴에 소개되는 걸 보며, 신기해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영정사진도 찍고, 유서도 작성하고, 입관까지 직접 해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은 진짜 그 날이 오기 전에는 절대 짐작조차 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우리가 모두 언젠가는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게 남은 48시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해피 엔딩 노트>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처음부터 한번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은 어땠으며, 대학이라는 사회에 처음 부딪쳤을 때는 또 어땠고, 졸업 후 첫 직장 생활, 그리고 나를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인연들과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던 순간,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던 그 순간까지 말이다.

 

이 노트는 그렇게 나라는 한 인간의 삶을 처음부터 현재까지 돌아보게 만들고, 추억에 젖게 만들고, 설레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그러다 후반부에 오면 나의 장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유언장을 써야 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죽음이 찾아오기 마지막 10초를 남겨두고,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다섯 장면을 꼽아보고, 가족들과 지인에게 보내는 나의 장례식 초대장도 작성해보고, 초대할 사람의 명단과 연락처 리스트까지 기재하고 나면 정말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다. 진짜 마지막에 다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남겨질 반려동물과 가족들에게,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단 한사람에게 내 주변을 정리해주길 부탁하는 글을 쓰게 될 즈음에 이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노트의 무게가 묵직해지면서 비로소 진짜 나의 마지막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이런 마음 가짐이라면 내일부터 나에게 오는 온갖 스트레스와 짜증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죽고 나면 만사 무용지물인 그것들에 집착하고 얽매여 있을 필요가 뭐 있겠는가. 새롭게 나에게 주어진 매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까울텐데 말이다.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래서 소중한 것 같다. 아무리 어리석은 이라도, 아무리 대담한 이라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나의 남은 생이 마지막까지 해피 엔딩으로 그려지길, 조심스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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