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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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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는 제발 말하지 말아주세요. 기억 못하실 겁니다. 그때 저는 쉰 명쯤 되는 무릎 까지고 지저분한 꼬마 중 하나였는걸요."

"하지만 그때도 이 집을 좋아했던 거네요?"

"망가뜨려서라도 갖고 싶을 만큼요."

헌드레즈홀에서 일했던 유모의 아들 패러대이는 삼십 여 년이 지난 지금, 의사가 되어 대저택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 그가 처음 헌드레즈홀을 보았던 것은 전쟁이 끝난 이듬해 여름, 열 살 때였다. 당시 그에게는 천하에 둘도 없는 완전무결한 대저택으로 보였던, 집의 외양 하나하나에 매혹되었던 그 기억은 삼십 여 년이 지난 뒤 몰라보게 변한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만든다. 에어즈가의 주치의에게 응급환자가 생기는 바람에 그가 대신 오게 된 것이었다. 저택 곳곳에서 보이는 쇠락의 징후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견고한 건물이라 더욱 무시무시해 보였다.

이 거대한 저택에 현재 살고 있는 에어즈 가문 사람들은 엄마와 딸, 아들, 그리고 하녀 한 명이 전부이다. 전성기에는 고용인이 스무 명은 족히 되었을 만큼 커다란 대저택이었지만, 재산을 거의 다 날리고 이제는 빚에 쪼들리며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인 아들은 전쟁 중에 부상을 입어 불편한 다리로 힘겹게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패러대이는 그의 다리를 무료로 치료해보겠다는 제안을 하고, 매주 일요일에 헌드레즈홀을 방분하게 된다. 그렇게 로더릭의 다리를 치료하고 그의 어머니와 누이인 캐럴라인과 차를 마시는 것이 그의 일과가 된다.

"그렇게 치면, 선생님이 이 집에 온 뒤로 쭉 문제만 생겼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내 말을 제대로 안 듣는군요. 그 소음과 전화벨이 다 신호였던 거예요. 벽에 쓰여 있던 낙서까지도. 어제 전성관에서 들렸던 목소리도-어머니는 막연히 그냥 숨소리라고 하셨지만, 어머니는 그게 수전의 목소리라고만 짐작했어요. 그게 바로 어머니가 듣고 싶어하셨던 거니까. 어쩌면 사실 로드의 목소리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목소리 따위는 아예 없었소!" 내가 말했다. "소리 같은 게 들릴 리 없지. 전화벨에 관해서라면.... 그 얘기는 이미 끝났잖소. 혼선이 돼서....."

화려한 전성기를 가진, 낡고 거대한 대저택은 고딕 호러의 단골 소재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고딕 장르는 새라 워터스의 손을 통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이야기가 패러대이의 시점을 통해 일인칭 관찰자로 진행되는데, 무려 700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페이지의 무게 감을 이겨내고 따라가다 보면 바로 이 시점에 특별한 재미가 숨겨져 있다. 독자가 화자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도 될까? 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 정말 오싹해지기 때문이다. 화자가 일인칭일 경우, 독자들은 그의 시점을 벗어나 전개되는 상황을 알 수 없기에 대부분 화자에게 동화되어 감정이입을 하게 마련인데, 그런데 바로 그 화자의 이야기가 어딘지 믿음직스럽지 못하거나 수상하다면? 그렇다면 머릿속에서 뭉개 뭉개 피어 오르는 의심 덕분에 화자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낡은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과 초자연적인 낯선 존재들의 흔적으로 평범한 고딕 소설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을, 바로 이 화자 덕분에 독특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 되고 있다. , 방대한 분량의 스토리를 충분히 인내하면서 따라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폴라 호킨스의 <걸 온 더 트레인>에서도 기억을 믿을 수 없는 불안정한 화자 덕분에 아찔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품 역시 화자를 너무 믿다간 수수께끼의 많은 부분들이 풀리지 않아 한참 헤매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길. 하지만 아무리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교육해도, 그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낯선 사람을 따라가고 마는 아이들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낯선 사람은 호기심을 자극하니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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