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E 샤르코 & 엔벨 시리즈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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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 소장품, 필름 판매 광고를 보고 영화 필름들을 구해온 한 남자가, 자신의 개인 영사실에서 정체불명의 단편 영화를 보다가 눈이 멀어 버린다. 단순히 영화를 보았을 뿐인데 실명을 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공포에 사로잡힌 그가 도움을 요청한 것은 바로 그의 전 여자 친구였던 뤼시 엔벨 형사이다. 그들은 온라인 상으로 만나 7개월 간의 짧은 연애를 했던 상대이다. 휴가 중이던 뤼시는 여덟 살 난 딸 쥘리에트가 바이러스성 위장염으로 입원 중이라 병원에서 간호 중이었다. 같은 시간, 머리가 잘려 나간 시체 다섯 구가 센 강가에서 암매장된 상태로 발견된다. 강력 범죄의 미제 사건을 다루는 행동분석가로 일하는 프랑크 샤르코 역시 휴가 중이지만, 르클레르 청장은 그에게 사건을 맡긴다. 다른 경찰들도 마찬가지로 휴가 중이지만, 그들은 아내와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샤르코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항상 그의 곁에 나타나는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실명을 하게 만든 영화 필름 사건과 다섯 구의 시신 사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샤르코와 뤼시는 공조 수사를 펼치게 된다.

"경정님을 측은히 여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겠어요.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끼는 습관이 제게는 없거든요."

"당신 다소 직설적인 투로 말하고 있군요. 앞에 있는 사람이 당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까, 경위?"

샤르코와 뤼시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윗사람에게 알리지도 않고 단독 행동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그녀를 보며 샤르코는 직감한다. 그와 그녀는 같은 부류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머릿속에 당신 아이들의 사진 대신 시체 사진이 들어차 있지 않느냐고, 그러다간 당신도 결국 나처럼 된다고. 뤼시는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인상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낀다. 대체 어떤 비극이 그를 집어삼켰기에 저토록 음울하게 침잠하게 된 것일까 생각하지만, 말과 행동은 머릿속 생각과는 다르게 내뱉고 만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매끈한 스릴러 영화에서처럼 이들 두 캐릭터의 상반된 매력은 이야기 진행을 더욱 맛깔 나게 만들어준다. 나는 소설의 진짜 힘은 캐릭터에 있다고 믿는데, 특히나 이들 두 캐릭터는 전혀 다른 작품에서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가 한 시리즈에서 만난 거라 더욱 흥미롭다. 이들 캐릭터의 탄생이 재미있는데, 프랑크 틸리에의 첫번째 소설 <핏빛 천사를 위한 지옥행 열차>의 주인공 프랑크 샤르코 형사와 두번째 소설<죽은 자들의 방>의 주인공 뤼시 엔벨이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샤르코&엔벨 3부작이 되겠다.

"악착스럽군. 꽤 오래 전에 죽은 기구한 이집트 여인들의 운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이오?"

"경찰이기 때문이죠. 흐르는 시간이 범죄에 대한 분노를 퇴색시키지는 않기 때문이고요."

"정의의 수호자의 그럴싸한 말이군....."

"그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일 뿐입니다. 무슨 일이든 철저하게 끝장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요."

스스로 '경찰이 견딜 수 있는 최악의 것들을 겪어온 걸어 다니는 캐리커처'라고 말하는 샤르코. 환영에 시달리는 것 때문에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약 기운으로 몸이 부푼, 홀로 늙어가고 있는 그는 산산조각 난 삶의 낙인이 찍힌 남자로 권투 선수의 주먹처럼 직설적인 남자이다.  윗사람들에게 치열하고 철두철미한 여성으로 통했던 뤼시. 그녀는 말단 서기 업무나 담당하다가 '죽은 자들의 방'과 관련된 사건 이후로 사법경찰국의 경위에 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백과사전처럼 박식하고 실전에 강하고 명민하지만 간혹 통제 불능의 경향을 보이는 그녀이다. 이렇게 그들은 완전히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면을 갖고 있는 묘하게 어울리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신경과학, 정신의학, 인간의 기억, 감각기관인 눈이 볼 수 있는 사실, 인간의 폭력성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심오한 고찰까지. 이 작품은 프랑크 틸리에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집필 전 자료 조사를 했는데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과학적인 진실이 꽤 많이 들려지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으며, 영화라는 평범하고 친근한 매체가 인간의 의도에 의해 얼마나 무섭게 돌변할 수 있는지 오싹할 정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요 며칠간 웃음을 잃어가던 카슈마레크가 뤼시에게 간만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지. 아이들은 말이야,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었던 게 항상 가장 우선시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간혹 힘겹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 존재를 정돈해주거든."

샤르코&엔벨 3부작 그 첫번째인 <신드롬 E> 은 이후 시리즈는 <가타카>, <아톰카>로 이어진다. <신드롬 E> 는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어 시나리오 각색 중이라고 하는데, 그럴만한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플롯과 매력 넘치는 캐릭터,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 신경과학과 스릴러의 만남이 가져오는 시너지까지 영상으로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작품이다. 특히나 샤르코와 엔벨은 직접 영상으로 본 것처럼 살아있는 캐릭터라서 다음 시리즈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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