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육체노동자들은 목소리가 크다.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다. 술집을 가든 당구장을 가든 제일 큰 소리로 떠드는 이들은 노가다 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늘 시끄러운 공사판에서 일하느라 소리를 지르는 게 습관이 되어서이다. 또한 아무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천명관 작가가 7년 만에 출간하는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야기꾼으로 탁월한 입담을 자랑하는 작가라 장편의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편도 그에 못지 않은 이야기의 맛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작가 자신 또한 어떤 이야기가 떠오를 때 시간도 길고 사이즈가 큰 편이라 단편으로 쓰기에 좀 아까운 것들이 많다며 장편을 주로 쓰는 이유를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전작인 <나의 삼촌 브루스 리> <고령화 가족>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무언가에 실패한 사람들, 밑바닥 인생 속에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동백꽃'에서 섬에 사는 유자는 도시로 나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버스차장을 하거나, 하다못해 호스티스라도 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생각이 애초에 없다. 섬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인 구 회장네 아들인 동엽에게 잘 보여 그의 아이를 배서 선주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사는 것이 소원이다. 그녀의 엄마인 점순 또한 딸이 그 집 며느리로 들어가 딸 덕에 편히 노후를 보내는 것을 꿈꾼다. '왕들의 무덤'에서 나름 자리잡은 작가아인 정희는 겉으로는 그럴 듯한 주류의 삶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며 내적으로 방황한다. 어릴 때 캐디 일을 하며 아버지 뻘인 손님이 자신을 희롱하던 기억도, 밤마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았던 엄마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도 그녀는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억을 차마 지워버릴 수도 없다. '파충류의 밤'에서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십 년 가까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로 긴 여행을 다녀왔지만, 언제부턴가 그녀에게 남은 건 지독한 불면뿐이었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에서 주인공은 한때 잘나가던 트럭운전사였지만 아내와 이혼 후 칠 년, 현재는 쉰일곱의 막 노동꾼으로 겨우 살아내고 있다. 딸과 아들과는 거의 대화도 없고, 함께 밥을 먹는 일도 없다. 그저 소주병을 친구 삼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다. '전원교향곡'에는 젊은 귀농 부부가 시골에서의 삶이 그들이 꿈꾸던 것처럼 되지 않아 결국 가족이 파탄 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얘야, 잊지 마라. 사는 건 누구나 다 매한가지란다. 그러니 딱히 억울해할 일도 없고 유난 떨 일도 없단다.

 

'우이동의 봄'에서 나는 언젠가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그의 할아버지에 관한 일로 파산한 가족이 할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기에 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자신만 알고 있는 평생의 비밀이 될 수도 있었으나, 결국 극의 마지막 즈음에 할아버지에게 진실을 털어 놓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떠올리며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결국 우리가 도착할 곳이 어디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인생의 준엄한 전언처럼 할아버지가 해줬던 말을 기억한다. 살면서 누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으나, 어디로든 가야만 하는 그런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그저 흘러가서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막막함, 답답함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인물들의 꼬이고 꼬인 인생들에게 천명관 작가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그저 무심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특히 재미있었던 작품은 천명관 작가가 자신이 쓴 유일한 장르 소설이라고 밝혔던 '핑크'이다. 대리운전기사인 남자와 그의 손님인 뚱뚱한 여자. 한국에선 분명 흔치 않는 몸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목도리와 패딩 점퍼 모두 핑크색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핑크 덩어리가 뒷좌석을 꽉 채운 느낌이 드는 손님이었다. 도로엔 점점 더 눈이 쌓여가고 있었고, 겨우 삼 만원 벌자고 무리를 했다가 차가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봐 바싹 긴장해야 했지만 남자는 신경안정제에 의지해 다소 몽롱한 상태로 운전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도 그렇고, 제한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도 그렇고 약간 미스터리 한 색채도 띠는 것이 기존 천명관 작가의 작품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도 자아낸다. 다음 번에는 천명관 작가가 맘 먹고 장편으로 장르 소설을 한 번 써보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마 기존의 장르 소설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천명관 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그래, 까짓것. 인생 뭐 있나? 이리 살아도, 저리 살아도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이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흘려 보내도 시간은 가고, 매 순간을 치열하게 겪어내도 시간은 마찬가지로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돌이킬 수 없다면, 어차피 부딪쳐야 한다면 즐겨보자. 나의 하나뿐인 생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