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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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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어느 날, 파리의 거리를 지나던 알랭은 배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차림의 아가씨들을 보며, 배꼽에 여성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보는 남자의 에로티시즘에 대해 생각한다. 뤽상부르 공원을 거닐던 라몽은 샤갈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 매표소에 늘어선 줄을 보고는 샤갈 전을 포기하고 공원을 산책한다. 다르델로는 자신의 몸에서 발견된 의심스러운 증상들이 암 때문이었는지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고, 그가 죽음을 초대할 일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만난 직장동료 라몽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거짓말을 한다. 샤를은 자고새 사냥에 관한 스탈린의 농담 이야기를 꺼내며 이를 인형극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말한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 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물론 이 작품 뿐만 아니지만) 밀란 쿤데라의 신작 소설이 14년 만에 나왔다.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등 네 주인공을 중심으로 소소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겨우 15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이라 페이지는 금방 넘어가지만,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끊임없는 사유는 책을 여러 번 읽게 만들어준다. 에로티시즘의 상징으로 꼽은 여자의 배꼽 이야기에서 시작해 배꼽에서 태어나지 않아 성()이 없는 천사, 가볍고 의미 없이 떠도는 그 천사의 깃털, 그리고 스탈린의 농담, 그에서 파생된 인형극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파리에 사는 네 남자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을 중심에 놓고 스토리가 이어진다. 특별한 사건이나 일관된 플롯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물들이 펼쳐내는 여러 상황과 다양한 사유가 끊임없는 재미를 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가 등장한 데 비해, 이번 '무의미의 축제'에는 스탈린 자신이 등장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강조했던 삶의 일회성과 우연성은 '무의미의 축제'에서 무의미라는 주제로 연결되며, 사실상 같은 말의 되풀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나처럼 쿤데라의 작품 중에 겨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밖에 읽어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번 신작에서 충분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얘기다.

 

"오래 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쿤데라의 나이를 감안하자면 (어쩌면)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될지도 모를 이번 작품은 농담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관한 우화다. 다르델로는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짓말을 한 뒤 묘한 희열을 느낀다. 거짓말을 한다는 건 보통 누군가를 속이거나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인 데, 생기지도 않은 암을 꾸며낸 것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의미 없음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스탈린의 농담은 `역겨운 거짓말`로 받아들여진다. 사냥을 간 스탈린이 자고새 스물네 마리를 발견하는데, 탄창이 열두 개밖에 없다. 열두 마리를 쏘아 죽인 다음 탄창을 가지러 13킬로미터를 왕복하는데, 돌아와 보니 남은 열두 마리가 그대로 있다. 이 경험을 스탈린이 자신의 동지들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그들은 모두 웃지 않고 입을 꾹 다문다. 모두 스탈린의 이야기가 웃자고 하는 농담이 아니라 역겨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담은 아무도 웃지 않는 장난, 즉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농담과 거짓말, 의미와 무의미, 탁월함과 보잘것없음, 그렇게 일상과 축제의 경계에서 쿤데라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의미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인간의 고독과 삶이 아무런 의미 없음의, 보잘 것 없음의 축제 이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니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쿤데라는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만 있는 것이며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고 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전부 단 한 번뿐이기 때문에 그 일회성은 가벼움을 상징하는 것이고, 특정한 사건과 직면했을 때 그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이다.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뚤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이다.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숱한 상황들을 무의미라는 이름으로 부르려면 용기가 필요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는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지혜의 열쇠도 될 수 있다. 물론 쿤데라의 이 무의미 예찬이 와 닿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생이 훨씬 간결하고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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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5-01-22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피오나 2015-01-23 20: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