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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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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이번 신작 <미국의 목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 스테인>과 함께 이어지는 미국 3부작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 1960년대 말의 혼돈스러운 미국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껏 달아오른 미국의 분위기가 베트남전쟁의 실패와 맞물리면서 어떻게 한 순간 사라지는지를 한 개인의 삶 속에서의 비극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 유대계 미국인인 스위드 레보브는 뛰어난 외모와 온화한 성품, 거기에 운동 능력까지 갖춘 위퀘이크 고등학교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당시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스위드라는 이름은 마법이었다. 그는 풋볼에서는 엔드, 농구에서는 센터, 야구에서는 일루수로 활약했는데, 팀의 성적과는 별개로 치어리더들은 스위드만을 위한 응원 구호를 따로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 어디에나 그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했을 정도로 또래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 또한 전폭적으로 그를 우상처럼 숭배했던 것이다. 이것은 스위드의 남동생 제리와 동기였던, 작품의 서술자이기도 한 네이선 주커먼 또한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네이선 주커먼이라는 인물은 필립 로스의 작품 여럿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필립 로스의 문학적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네이선은 1995년 동창회에서 스위드의 비극적 인생에 대해 듣고서 그에 관한사실주의적인 연대기를 쓰고자 하는 작가적 열망을 느끼고 주커먼의소설혹은상상속에서 스위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위드는 삶이 가르쳐줄 수 있는 최악의 교훈을 배웠다. 삶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면 행복은 두 번 다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없다. 행복은 인위적인 것이 되며, 그나마도 자신과 자신의 역사와 고집스럽게 거리를 두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갈등이나 모순에 온화하게 대처하던 착하고 다정한 남자, 공정한 적과는 무슨 싸움을 하더라도 분별력 있게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던 자신만만한 운동선수 출신의 남자는 공정하지 않은 적, 즉 인간관계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악과 만나는 순간 그것으로 끝이 나버리고 만다.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 천성적 고귀함을 타고났던 사람은 너무 많은 고통을 겪는 바람에 다시는 순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스위드는 2차 대전 후의 호황기를 누리며 자라 미스 뉴저지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고, 아버지의 장갑공장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전원적인 집까지 마련하고, 목가적인 삶을 향한 그의 꿈은 모두 완벽하게 실현된 듯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날, 스위드의 찬란했던 꿈이 산산이 깨지고 마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딸 메리가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며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살아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던 스위드 레보브의 삶은 역사적 광풍 속으로 휘말려 들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

반전운동에 도취된 딸은 미국인을 향해 폭탄 테러를 가하고, 가업은 서서히 몰락하고, 사랑하는 아내는 외도를 저지른다. 보통의 미국인들처럼 평범하고 목가적인 삶을 꿈꾸었던 성실하고 나무랄 데 없는 한 유대인 가족에게 닥친 이 비극은 시대적 사건들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비극적으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그리고 있다. 1960년대 말 미국은 위기에 처한다. 2차 대전의 승리가 가져온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집단적 도취의 기간을 보낸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뛰어들지만 수세에 몰린다. 급기야 베트남의 기습으로 미국 대사관마저 피해를 입게 되자, 미국 내 반전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어지면서 바야흐로 반정부, 반체제 운동으로 폭력과 무질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갔던 무수한 참전용사아버지들은 졸지에 반전주의자아들들의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되고, 피땀 흘려 일군 가업은 인종차별에 반발한 흑인들의 폭동으로 어려워진다.

 

미스 아메리카를 원했어? 그래, 형은 미스 아메리카를 얻었네. 말 그대로 말이야. 형 딸이 미스 아메리카잖아! 진짜 미국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고, 진짜 미국 해병대가 되고 싶었고, 아름다운 이방인 아가씨를 품에 안은 진짜 미국 거물이 되고 싶었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미합중국에 속하기를 갈망했어? 그래, 이제 그렇게 됐네. , 딸 덕분에 말이야. 이곳의 현실이 바로 형 입안에 있어. 딸 덕분에 형은 그 똥더미, 진짜 미국의 미친 똥더미 속으로 내려갈 수 있는 한 깊이 내려가 있단 말이야. 미친 듯이 날뛰는 미국에! 길길이 날뛰는 미국에! 젠장, 시모어, 이 빌어먹을 인간아, 네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자신의 삶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어 고뇌하는 레보브, 그의 딸 아이는 처음에는 말더듬이였다가, 다음에는 살인자였다가, 다음에는 자이나교도가 된다. <그는 평생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잘못을 저질렀다. 그가 그 자신 안에 가두어두었던, 그가 있는 힘을 다해 깊이 묻어두었던 모든 잘못됨이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는 표현처럼 이 또한 모두 그의 잘못인 걸까? 미국의 목가가 파괴된 이유를 찾으려는 네이선 또한 스위드의 삶을 파헤쳐가지만 사실 이것은 답 없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선하고 도덕적인, 한때 모두의 영웅이었던 그의 노력과 성실함으로도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생의 광포함. 이것을 과연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유대인인 스위드가 이방인과 결혼까지 하여 미국 주류 문화에 깊숙이 동화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살다가 딸이 미국 사회의 격변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 전체까지 크게 뒤흔들리게 되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 자체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전작인 <에브리맨>에서도 주류의 삶을 살아왔다는 착각에 빠졌던 한 유대인의 말년을 그린 적이 있는 필립 로스는 이번 작품에서 비로소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에 관해서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가 유대인 작가만이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것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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