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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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이웃들에게 던지는 표창원, 지승호 두 남자의 승부구!

“혹시, 당신도 공범 아닙니까?”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 중에 이런 게 있다. 전 세계 범죄 전문가들끼리 하는 농담 중에 누가 해결을 잘 하는지 형사 올림픽이 열린다면, 숲 속에 곰 한 마리를 풀어놓고 얼마 만에 잡느냐 경연 대회를 하는 것이다. 참여는 구 소련의 KGB, 미국의 FBI, 중국의 공안,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과연 여러분들은 누가 가장 먼저 곰을 잡아올 것인가? 우선 무기가 우수한 KGB가 미사일 포탄을 쏴서 곰의 잔해를 수습해서 가져온다. 규정에 죽이지 말라는 건 없었으니까. 그렇게 수습해서 가져올 때까지 걸린 시간이 다섯 시간이다. 이번엔 과학 수사로 유명한 FBI '저런 무식한 놈들' 하더니 헬기 3대를 띄워서 적외선 열 감지기를 총동원해 곰의 위치를 찾아낸다. 그리고 투망을 던져 곰을 잡기까지 걸린 시간 세시간. 그 다음엔 인력으로 밀어붙이는 공안이 10만 여명을 숲에 배치해 인해전술을 사용, 한 시간 만에 곰을 잡아온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한국은 두 명의 운동화 신은 형사가 쫄래쫄래 나오더니, 10분 만에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곰을 잡아 왔다고 하면서 품속에서 토끼를 꺼내, 토끼를 때리면서 "말해, 너 누구야." 하니까 토끼가 겁에 질려 '"저 곰이에요.'"라고 대답했다는 우스갯소리이다. 우습지만, 수사에 얽힌 어려움을 풍자한 슬픈 얘기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도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는 표현이 나오지만, 과거 80년대처럼 일부러 증거를 조작한 예가 아니더라도, 너무 잡고 싶으니까 정황상 그렇게 믿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혹은 상황에 몰려가다 얼떨결에 범인이 아닌데도 자백을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렇듯 이 책은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문제점들, 과학수사의 어려움,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를 사회가 방치하고 있는 부분까지, 잘못된 관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범죄는 남의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범죄를 목격했을 때에도 나에게 피해가 올까 걱정해서 선뜻 나서거나 도와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말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표창원 교수의 신념은 가히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표창원 교수의 저서는 너무 많지만, 나는 그 중에 <한국의 CSI> <한국의 연쇄살인>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한국형 과학수사에 대해, 살인마에 대한 심리분석에 대해 아주 흥미로웠던 책으로 기억한다. 국내 최초의 프로 파일러라는 걸로 유명하신 분이지만, 요즘은 방송에서도 자주 뵐 수 있고, 책도 많이 출간되고 있어 그냥 작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로 알려진 지승호 저자의 글은 재작년 엄청 화제였던 김어준 총수의 인터뷰 <닥치고 정치>를 통해서 처음 만났었다. 인터뷰 대상도 선별해서 정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지승호가 인터뷰하는 표창원' 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연예인 인권의 그늘, CSI 신드롬과 CSI 이펙트, 범죄 영화에 대한 분석,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증가하는 학교 폭력과 가정폭력, 낮아지는 취업률,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 잦은 권력형 비리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잠재된 분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한국적인 살인, 사회적 특성에 의해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살인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신창원이 표창원 교수에게 직접 보내온 친필 편지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언급까지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 지점에서는 속이 다 시원할 만큼 직설적이고, 흥미진진했다. 어느새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뿐인데, 그냥 '공범'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나와 상관없다고 정의를 모른 척 하고, 나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올 까봐 두려워하고, 다들 그렇게 하는데, 굳이 나만 고고한 척 바른 생활을 할 필요 있냐며 묻어가고, 그랬던 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이들처럼 소신 있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나선다면,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좀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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