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교수 크리스 페리의 빌어먹을 양자역학 - 양자물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헛소리를 물리치는 법
크리스 페리 지음, 김성훈 옮김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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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학에서는 어떤 섹시하고 새로운 것들이 대중의 시선을 끌었을까? 물론 빌어먹을 양자물리학이었다. 양자물리학의 개념 중 제일 먼저 대중문화 속으로 파고든 것은 불확정성 원리였다. 일상의 대화에서 불확정성 원리는 절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반박 불가능한 사실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별로 심오한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사실 좀 시시한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당신은 지식의 한계를 아는 것이 곧 힘이라는 불확정성 원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더없이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p.92


양자물리학은 모든 현대 기술의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물리학 덕분에 우리는 물질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별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망원경 너머 저 먼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시계, 레이저, 의학용 스캐너, 그리고 컴퓨터도 모두 양자물리학 덕분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세상엔 양자에 대한 헛소리도 넘쳐난다. 양자역학의 개념들을 이용해 물건을 팔아먹거나 사기를 치는 이들도 많으며, 양자물리학의 개념을 아무데나 갖다 붙이며 대중을 현혹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발끈한 한 물리학자가 양자 헛소리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양자 물리학 지식을 알려 주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로라 버먼 박사가 쓴 <양자 사랑>이라는 책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고 한다. '양자장의 힘을 이용해서 감정과 의도를 갈고 닦아 그 욕망의 주파수나 진동을 만들어내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양자에 관련된 헛소리들은 어느 서점이든 뉴에이지 섹션을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귀네스 펠트로의 웰빙 실험실〉의 어느 ‘치유사’에 관한 영상에서도 양자물리학에 관해 언급이 되고, TV 범죄드라마 <넘버스>에서는 '양자'라는 핵심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하며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서도 나온다. 파동 에너지를 이용해 암을 치료할 수 있다거나, 양자역학의 원리에 기반해 의식을 조정해 내가 원하는 좋은 것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거나, 양자공명을 통해 행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들은 모두 유사과학, 혹은 대체사실이지만 점점 더 실제 과학과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호주의 양자물리학자 크리스 페리는 이 책에서 그러한 양자 헛소리가 아닌 진짜 양자역학을 알려준다. 





자연의 법칙은 과학적 실재론이 낳은 가장 극단적인 결과물이다. 과학적 실재론에서는 우리와 독립적으로 실재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실재가 따르는 일련의 수학적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자신의 내적 완벽함에서 절대로 벗어나는 일 없이 칙칙폭폭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다. 과학자로서 우리의 목표는 이 거대한 기계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 강력한 개념이고, 이것이 수백 년 동안 물리학의 길을 인도해왔다. 하지만 이 괴물 같은 개념에 시비를 걸어보자.          p.192


가히 지금껏 나왔던 양자물리학 책 중 가장 웃기고 기발한 책이라는 소개가 과장이 아닌 것이, 이 책의 저자는 실제로 시드니공과대학교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마치 친근한 동네 형이나 오빠처럼 말을 한다. 번역이 그러한 저자의 말투를 잘 살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무겁고, 복잡하고, 어려운 양자물리학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가벼워도 되나 싶을 만큼 가벼운 말투와 유머가 깨알같이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머시라? 빈정대며 한 얘기인데 몰랐다고? 아이고야... 갈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양자 에너지가 정말 내가 부자가 되게 도와줄 수 있을까? 당신이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니 나도 박식한 척 어리석은 답변을 하겠다.', '그래도 꼭 이런 거짓말을 하고 싶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전문 용어표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적어도 똑똑해 보이기는 할 테니까.', '나는 아인슈타인이 이 책도 지지해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노벨상 위원회 여러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제 연락처는 책 표지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세요.' 등등 진짜 양자물리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방식은 시종일관 농담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니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면 뭐야, 양자물리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물리학과 수학을 잘 모르는 이들의 눈높이에서, 수식을 최소화하여 양자물리 전반을 설명하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부실하지 않다. 양자의 개념과 양자 에너지의 진짜 비밀, 양자역학의 역사, 파동-입자 이중성, 불확정성 원리, 중첩, 양자 얽힘, 양자해석, 그리고 다양한 양자기술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다양한 이론과 실험 사례들을 통해 알려준다. 양자물리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개념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부분을 특히나 재미있게 읽었다. '이 빌어먹을 좀비 고양이는 시, 텔레비전, 블록버스터 영화 등등 어디에나 튀어나온다'며 투덜대는 저자는 양자물리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의 한 사례인 '중첩'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저자의 강의를 듣다 보면 양자물리학이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속 시원하게 독설과 욕설도 마다 하지 않는 이 책은 대단히 웃기면서도 진지하고, 양자물리학의 전반을 다루고 있음에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며,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게 양자물리학의 세계에 입문하게 해준다. 세상의 모든 학교에서 물리학을 이렇게 가르친다면 아마도 보다 많은 학생들이 물리학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자,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기발한 양자물리학 수업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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