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 내 마음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그림 50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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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어 '이 사람이 중년이 되어 좀 더 성숙하고, 무사히 노년기를 맞아 좀 더 오래오래 작품활동을 했다면, 얼마나 훌륭한 걸작이 나왔을까' 하는 슬픈 상상을 하게 만드는 작가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조르주 쇠라를 사랑한다. 쇠라는 일상의 아주 사소한 풍경 속에서 인간이 번쩍, 찬연하게 빛나는 한순간을 포착해낼 줄 알았다. 그림을 가지고 소설을 써볼 수 있다면 가장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만 같은 그림들, 많은 사람의 천변만화한 사연들을 작은 화폭 속에 마치 '압축된 소우주'처럼 담아낼 줄 알았던 화가가 바로 조르주 쇠라였다.              p.43


정여울 작가가 '내 심장을 꿰뚫은 그림들'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택한 50편의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본격 미술 에세이집이다. 무엇보다 '오직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미술사적인 중요도나 배경 지식이 없어도 그림 그 자체를 사랑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해주니 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 조르주 쇠라 〈서커스〉, 살바도르 달리 〈창가의 소녀〉, 에드워드 호퍼 〈호텔 방〉, 빈센트 반 고흐 <죄수들의 보행>,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피터르 얀센트 엘링가 <책 읽는 여인> 등 유명한 그림도 있고, 낯설게 느껴지는 그림들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모든 그림들 속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에 미소를 짓게 만들어 주고, 안전한 곳에서 꿈꿀 권리를 되찾게 해주고, 처절한 외로움을 위로 받고, 세상을 바꾸는 힘을 깨닫고, 악몽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용기를 배운다. 클림트가 그린 아델의 초상화를 통해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그 모든 장애물에 맞서는 눈부신 자유를 느끼고, 샤갈이 아내를 향한 사랑을 담아 그린 그림을 통해 우리를 아래로 잡아끄는 마음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환희를 경험한다. 





형태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오직 색채만이 지닌 아름다움이 있다. 클림트의 이 그림은 보라색이 과연 어디까지, 얼마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너무 미워 용서가 잘 되지 않는 날, 애써 용서를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날, 클림트의 보랏빛 위로를 떠올려보자. 그 그림 속 소녀의 싱그러운 느낌을 떠올려보자. 금방이라도 저 카펫을 가볍게 박차고 어디론가 날아오를 것만 같은 사뿐한 느낌, 이 세상 어느 권력 다툼에도 끼어들 필요가 없는 충만한 영혼, 그 순수한 깨어남을 닮아보자. 보라색의 위로는 조화와 용서, 화해와 너그러움, 우아함과 격조에서 우러나오기에.            p.162

~163


정여울 작가는 미술관에 가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낯선 도시를 찾아 헤매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들을 발견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전 세계 낯선 도시들의 미술관을 탐험하며, 아주 특별한 큐레이션을 만나게 된다. 내밀하고, 사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내는 그림 컬렉션은 명화를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느껴지게 해준다. 친근하고, 다정하게, 나랑 상관없는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곁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내 얘기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준다. 피터르 얀센스 엘링가의 <책 읽는 여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라는 작품 속 소녀와 여인은 17세기의 세상 속을 살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강력한 연대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만의 시간만 있다면, 그 어떤 스트레스와 고민과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는 마음이 이 그림들에서도 느껴졌던 것이다. 어떤 그림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우리 마음속에 '자기만의 독립적인 방'을 만들어 준다고, 이 책은 말한다. 나를 치유해주는 공간이 지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뿐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곳, 주소조차 없는 곳, 그러나 마음속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은 나만 아는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다.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이 세상이 생각보다 따스하고 친절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마다, 바깥세상이 시끄럽고 충격으로 가득할 때도 '내 마음의 치유 공간'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면 되겠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책 속에 담긴 그림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작품은 카라바조의 <글을 쓰고 있는 성 제롬>이다. 해골을 앞에 두고 (그러니까 다가오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글 쓰기와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너무도 공감이 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나만의 인생 그림'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주저 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림 하나가 내 마음속에 치유 공간을 만들어 지친 어느 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세상 끝에 혼자인 것 같은 날 외롭지 않도록 도와줄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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