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드는 세계 위대한 도시들 2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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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해 도시가 추락하고 있다. 나무의 몸통을 향해, 그리고 불가능할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는 뿌리를 향해. 죽은 도시에서 느꼈던 평화로운 감정은 이제 없다. 파드미니는 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내러 황급히 전화기를 꺼낸다. 손가락이 땀에 젖어 키보드 화면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바람에 도저히 문자를 칠 수가 없어 결국은 음성 인식으로 전환해 소리 내어 말해야 한다. "저기요, 여러분? 우리 전부 다 곧 죽을 거예요.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서요."               p.215

 

<우리는 도시가 된다>에 이어 <우리가 만드는 세계>로 N. K. 제미신의 '위대한 도시들' 판타지 2부작이 완결되었다. 이 시리즈는 N. K. 제미신의 첫 단편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에 수록되었던 '위대한 도시의 탄생'에서 비롯되었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거대한 촉수를 가진 도시의 침입자를 막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화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 이미지처럼, 이야기는 거침 없는 활극으로 시작되었던 이 시리즈에서 도시는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유기체이다. 다른 모든 생물처럼 말이다. 도시는 자신을 대변하고 보호할 대리자 '화신'으로 구성원 중 누군가를 선택하고, 맨해튼, 브롱크스, 퀸스, 브루클린, 스태튼 아일랜드 등 뉴욕의 다섯 개 자치구를 수호하는 화신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각성하고, 수백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위기에 처한 도시를 구하려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는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까지 뉴욕 시의 다섯 자치구의 화신들이 각각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과정이 그려졌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뉴욕에 막 도착한 남자, 전직래퍼이자 현직 변호사인 시의원, 수학천재 대학원생, 미술관 관장, 외딴 섬에서 일하는 사서는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화신이라는 것을 각성하고, 각자의 도시에서 촉수의 형태로 곳곳에 등장하는 '적'을 목격했다. 스태튼 아일랜드를 제외한 화신 넷이 모여 뉴욕 전체를 대표하는 화신을 찾아가는 여정까지가 <우리는 도시가 된다> 였다면, <우리가 만드는 세계> 에서는 전작에서 3개월 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같은 속도로 다중우주 아래로 계속 추락한다면 한 달도 못 돼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할 거예요."
웃음소리가 점차 옅어진다. 아직 몇 군데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파이윰이 지루함과 멸시, 그 중간 어딘가쯤의 표정을 지으며 짙은 아이라인이 그려진 눈가를 가늘게 좁힌다.
"아주 극적인 표현이군. 돌이킬 수 없는 지점?"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는 시점이요... 우린 지금 물질과 에너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게 산산조각 나는 임계점을 향해 접근하고 있어요."              p.383

 

전편에서 벌어진 소동으로 생긴 피해는 아직 복구되지 않았고, 스태튼 아일랜드는 여전히 적인 ‘하얀 여자’에게 포섭되어 다른 화신들과는 단절된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을 향해 사람들이 느끼는 ‘혐오’라는 감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과 시장 선거의 배후에도 적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화신들은 브루클린의 뉴욕 시장 출마를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그렇게 ‘시장 선거’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 인종 차별, 제노포비아, 인터넷 여론 조작 등 현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차곡차곡 묘사하며 평행세계에서 넘어온 '적'과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도시라는 공간이 자의식 있는 생명체라는 것도, 도시의 대리자이자 보호할 화신이 평범한 시민 중에서 선택된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살고 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야 할 도시를 지키기 위해 적에 맞선다는 것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처럼 느껴지기도 했었고 말이다. 도시가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유기체라는 것, 하나의 세계에선 평범한 사람이지만 공간과 물리학의 법칙이 다르게 작용하는 또 다른 세계에서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우리라는 존재가 수많은 세계가 하나로 합쳐진 거라는 설정만으로도 너무 매혹적인 작품이다. 제미신 특유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서 있는 SF적인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버무려진, 이 스펙터클하고 박진감 넘치는 판타지를 만나 보자. '부서진 대지' 3부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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