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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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생명의 세계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방식, 자기 주변 생물들의 이름을 짓고 체계화하고 개념화하는 방식에 관해 기존에 어떤 사실들이 알려져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오래된 책들과 옛날 과학저널들을 들쑤시고 다녔고, 이상한 것들, 잊힌 것들, 한 번도 제대로 알려진 적 없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어둡고 먼지 쌓인 도서관들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게 좋았다. 괴상한 동물과 이국적인 식물, 그리고 그보다 더 기이해서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들에 관한 글을 읽을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 좋았다.             p.172~173

 

작년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과학 책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쓴 룰루 밀러는 감사의 말에서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에 대해 언급했다. 캐럴 계숙 윤이 지적인 부분에서 대모 역할을 해주었다고,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 덕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 역시 룰루 밀러의 책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 책이 매우 궁금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캐럴 계숙 윤은 예일대와 코넬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진화 생물학자이자, 20년 넘게 《뉴욕 타임스》에 글을 연재한 과학 칼럼니스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현역 과학자였기에,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실험용 생쥐와 놀거나, 어머니가 꾸린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결혼도 과학자와 했으며, 친구들도 대부분 과학자인데다, 과학자가 되고 나서 수십 년 동안 과학계의 경이롭고 새로운 발견들에 대한 글을 쓰며 보내왔다. 이 책은 그렇게 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학자이자 저술가인 그가 분류학과 진화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통찰력을 담고 있다. 진화 생물학을 다룬 책들은 꽤 있어 왔지만, 분류학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류학에 대한 가장 쉽고도 정확한 설명은, 이 책의 첫 문장에 담겨 있다. '200년도 더 전에 과학자들은 생명 세계 전체(꽥꽥거리고, 휙휙 지나다니고, 꽃을 피우고, 덩굴손으로 감아 오르고, 잎을 내고, 털이 복슬복슬하고, 초록이고, 경이로운 그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이려는 과업에 착수했다'라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분류학'이고, 분류학은 생물학의 시작점이 된다.

 

 

 

이 책을 쓰는 작업에 착수하기 전, 나는 생명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이 과학이라고 확신했다. 이치에 맞는 다른 그 어떤 방법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사실 확신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대로 명백한 진실이었다. 진화의 질서는 올바로 판독하기만 하면 정말로 소중한 지식이며, 모든 생물의 진짜 역사를 흘깃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이것을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최선의 방법일 뿐 아니라 유일하게 맞는 방법으로 알았다. 아무리 독특하고 재미있더라도 다른 모든 분류법은 틀린 것이었다. 아무리 기이한 일 같더라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았다.             p.394

 

흥미로운 대목이 많은 책이었지만, 특히나 인상깊었던 것은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이었다. 이 단어는 독일어로 ‘환경’, ‘주변 세계’, 나아가 '세계관'을 뜻하는데, 우리가 공통적으로 지각하는 세계를 말한다. 생명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 특유의 감각에 대한 생각을 일깨우는 '움벨트'라는 개념에서 비롯되어 이어지는 내용들이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아프리카부터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까지 언어와 문화, 사회, 살아가는 장소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비슷한 분류를 하는 이유를 바로 움벨트가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매일 의식하지도 못한 채 한 종 안에서도 또 질서를 매기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분류하고, 판단한다. 이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 움벨트라는 렌즈를 통해서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인류학과 생물학, 인지심리학, 생태학, 진화생물학을 넘나들며 분류학이라는 낯선 과학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작가가 대중을 상대로 오랜 세월 글을 써온 이력 때문인지, 굉장히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딱하고 어렵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책이었다.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칼 린나이우스가 시골 교구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하고 교육도 잘 못 받은 아이에서 자연의 질서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상을 거머쥐려 하는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모험도 재미있었고, 진화론으로 세상을 바꾸어 놓을 다윈의 따개비에 관한 연구는 실패와 삽질의 연속으로 그야말로 애증의 대상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며 물고기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처럼 분류학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룰루 밀러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직관과 진실의 충돌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자세히 들려주는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향해 걷지 말고 뛰어가보시기를 권합니다.' 라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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