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의 매혹적인 걷기의 말들
존 다이어 외 지음, 수지 크립스 엮음, 윤교찬.조애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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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해 보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국인들은 걱정에 찌들고 조급해하고 내일에 대한 기대감에 오늘을 담보 삼아 불만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걷기는 이런 삶에 내리는 처방이다. 약을 짓는 것과 같은 기대감과 목적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피로감이 쌓일수록 약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봄날 즐거운 마음으로 언덕 너머로 산책하기. 추운 겨울 날씨에 밖으로 나가보기. 발이 땋에 닿을 때마다 마치 불이 이는 것 같고... 이런 희열감이나 탁 트인 길을 걸을 때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미국인들은 거의 모르고 지낸다.            p.51

 

한 걸음씩 꾸준히 걷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누구나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고개를 들어 길을 잘 살피면서 차곡차곡 발걸음을 쌓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때로는 별다른 목적지 없이 걷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혹은 사색에 잠겨 걷는 시간을 우리는 산책이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대부분 산책이라는 행동은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별다른 일정이 있지 않은 날에도 만보는 거뜬히 걷는다. 매사에 급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산책을 하는 순간만큼은 어딘지 여유로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동차를 타고 달려갈 때는 미처 볼 수 없는, 천천히 걷기를 할 때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 또한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걷기를 예찬한 작가들은 꽤 많이 있었다. 걷기를 사유의 방법으로 택한 철학자와 작가들에 대해서는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 이 작품에도 등장했던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등은 리베카 솔닛의 책에서도 만났던 작가들이다. 걷기에 대한 열망이 어떻게 문학적인 사유로 발전되었는지 대문호들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일은 설레임을 안겨 준다. 갈수록 모든 것이 짧아지고, 빨라지는 세상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 책을 통해 만나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걷기에 대한 예찬은 삶을 조금은 느리게 돌아보라고, 조금 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원을 거닐며 자연과 하나가 되고, 사색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을 파고들기도 하고, 걷는 시간을 창작 활동으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마거릿은 7월 말에 집으로 돌아왔다. 무성한 숲은 나무의 진한 녹음으로 어두워 보였고 그 아래에서 고사리가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을 받고 있었다. 날씨는 무덥고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거릿은 아버지 옆에서 나란히 걸어갔는데,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사리를 밟아 특유의 향을 느끼면서 잔인한 기쁨을 맛보았다. 따스한 햇빛과 향긋한 공기로 가득 찬 공터에는 야생 식물이 햇빛 아래 자유롭게 어우러져 있었고, 빛을 받아 생기 있는 허브와 꽃 들도 보였다. 이러한 삶, 적어도 이 산책만큼은 모두 마거릿이 기대한 대로였다. 그녀는 이 숲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p.251

 

이 책은 17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문호들의 '걷기'를 주제로 한 글들을 모은 앤솔로지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버지니아 울프, E.M. 포스터, 윌키 콜린스, 제인 오스틴, 토머스 하디, 에밀리 브론테, 조지 엘리엇, 찰스 디킨스 등 서른네 명의 작가들이 시와 에세이, 소설 등에서 '걷기'라는 주제로 쓴 글들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걷기를 통해 어떻게 문명으로부터 멀어지고 자연과 우리 본연의 자아를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일평생 28만 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하는 윌리엄 워즈워스에게 걷기는 창작 활동의 일부이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거의 매일 산책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글을 썼으며, 마크 트웨인은 걷기의 즐거움이 대화를 나누는 데 있다며, 자신이 직접 경험한 여행기를 유쾌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불면증으로 고통받던 찰스 디킨스는 자전적 에세이에서 노숙자의 시선으로 밤 산책을 묘사했고, 앨프리드 테니슨은 도보 여행이 중요한 테마가 되는 시에서 걷기를 통해 슬픔을 표현했다.

 

걷기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책속 문장들 또한 우리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크게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실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걷기 그 자체를 주제로 한 산책자의 내면을 다룬 장,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향하는 도보 여행을 다룬 장, 걷는 존재들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글들을 모은 장, 그리고 관찰자가 되어 배회하는 도시 산책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장으로 구분되어 있어 원하는 대로 골라 읽으면 된다. 이렇게 작가들이 길 위에서 써내려간 사유와 감성의 문장들을 책 한 권으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앤솔로지만의 특별한 점이 아닐까 싶다.  빠르게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을 걷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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