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덕질 - 일상을 틈틈이 행복하게 하는 나만의 취향
이윤리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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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의정부 어느 작은 산 아래에서 한 여자아이가 책을 꺼내 들었다. 아이는 아카시아와 곰팡이에 지배당한 가족들의 집에서 걷는 식물을 처음 만났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 공포의 그림자와 흐린 삶이 교차하던 순간을 목격했다. 삶은 가난하고 별것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몇 권의 책을 마련하는 작고 소중한 마음이 있었다. 아이는 생명으로 붉게 번쩍이던 표지를 넘겼다. 이것이 내가 SF에 매혹당한 첫 순간이었다.        - 이윤리, 'SF와 나의 이야기' 중에서, p.18

 

<이웃 덕후 1호>에 이은 ‘미래엔 단편 에세이 공모전’. 제2회 수상작품집이다. 이번 제2회 공모전에서는 이전 회보다 늘어난 공모작 수뿐만 아니라 확연히 업그레이드된 글의 수준이나 덕력이 돋보였다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이제는 사회적 현상이 된 ‘덕질’,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모아 듣기 위해 만들어진 ‘덕후 에세이’ 공모전이라 이번에는 또 어떤 개인의 취향을 들려줄 지 궁금했다. 첫번째 공모전의 수상작은 총 다섯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총 일곱 편이다.

 

SF, 책, 여성 아이돌, 식충식물, 발레, 로맨스판타지, 인형 덕후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글을 만날 수 있었다.  취미보다는 더 깊이 들어가는, 어쩐지 자랑하고 싶은 나만의 취향이기도 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물론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덕질은 마음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가산을 탕진하게 하고, 집 안 곳곳의 공간을 침범해 가족들의 눈총을 받게 하고, 잠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몰입하게 만들어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니 덕질의 대상이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인지, 망치러 온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 잠시라도 행복했다면, 그래서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사람들이 그저 현재에 머물며 꿈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을바람에 잎이 떨어지듯, 그대로 시들고 약해져 흩어지지 말고 우리 마음속에 꿈과 희망의 등불을 밝혀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열정적이고 빛나는 사람이다. 발레 덕후로 입덕을 하고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으니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뤄 두었거나 꼭꼭 숨겨 두기만 했던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꺼내서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 강유주,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 중에서, p.138~139

 

대상을 받은 작품은 <SF와 나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SF를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 문고본 SF 소설을 시작으로 <블레이드 러너>, <그리폰 북스 시리즈>, <네 인생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자신의 삶과 SF 소설을 함께 엮어내는 글이다. 가족사와 개인사가 SF 소설 작품들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게 하고, 내일을 향한 기대를 하게 해주며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글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최우수상 수상작은 <이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로 나 같은 '책 덕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회성이 부족해서 책 덕후가 되었다는 고백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시절, 중고등학생시기를 도서관 단골로 지내며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하며 책에 집착하며 살아온 나날들을 풀어 놓는다. 기묘한 책들과의 만남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는데,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만화방에서 발견한 동인지, 옥중소설, 흑마술 등등 오직 책 덕후만이 공감할 수 있는 대목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우수상 수상작 다섯 편은 덕질의 분야가 조금 더 다양하다. 여성 아이돌을 응원하며 그와 함께 성장한 인생의 여정도 있고,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의 매력을 전파하고자 하는 식충식물 전도사와 40대의 나이에 발레를 시작한 발레 덕후의 이야기, 웹툰이나 웹소설 장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로맨스판타지에 관해 진한 애정을 표현하는 덕후, 10년 동안 인형 덕후로 살아온 인형 수집광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 역시 뭐든지 좋아하는 그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지금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매일매일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삶의 기쁨이 어떤 충만함을 안겨주는지 깨닫게 된다면 소확행이란 것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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