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니쿠코짱!
니시 가나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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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쿠코가 둔감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이것저것 캐물으면 귀찮으니까. 동시에 마음 어딘가에서 지금 내 상황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니쿠코에게 상담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지만, 이 너무나도 싫은 기분을, 자그마한 절망을 누가 알아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니쿠코가 그날 마리아 집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 상황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엉뚱하게도 니쿠코가 원망스러웠다. 어린애 같은 감정인 줄은 아는데, 연신 바뀌는 텔레비전 채널을 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니쿠코가 얄미웠다.           p.114

 

북쪽 지방의 작은 항구 마을, 고깃집에서 일하는 엄마 니쿠코와 초등학생 딸 기쿠코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녀다. 키 작고, 뚱뚱한 니쿠코는 순진한 성격 때문에 나쁜 남자들만 만나 번번이 실연 당하지만, 언제나 무한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이다. 반면 기쿠코는 삐쩍 마른 체형에 길쭉한 팔다리, 하얀 피부, 짧은 머리에 호두처럼 큼지막한 눈을 가졌다. 어딜 보더라도 전혀 닮지 않은 엄마와 딸이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성격도 달라서, 사춘기가 된 기쿠코는 가끔 엄마 니쿠코가 부끄럽다. '니쿠코는 정말로 바보인가? 하는 생각'을 할 만큼, 거지같은 남자들에게 몇 번이고 속아 넘어가는 엄마를 이해하기란 딸이라도 결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기쿠코의 반에는 브래지어를 하는 애도 있고, 생리를 시작한 애도 있었다. 하지만 기쿠코의 몸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예전 그대로다. 가슴은 납작하고 다리는 나뭇가지 같다. 기쿠코는 남자애 같은 자신의 몸이 좋다고, 앞으로도 가슴도 커지지 않고 생리 따위도 시작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어른이 되기 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이 시기가 끝나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모순이지만, 양쪽 다 기쿠코의 진심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반에서는 여자아이들의 편 가리기 싸움이 시작되고, 기쿠코는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갑갑한 항구 거리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기를 바라던 기쿠코는는 색다른 소년 니노미야의 세계를 알게 되고, 마을의 따뜻하고 개성 넘치는 이웃들과 지내며 점점 이곳이 좋아진다. 그런데 엄마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면서 결국 또 그 남자에게 버림 받아서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될 까봐 불안해진다.

 

 

 

"살아 있는 한 쪽팔리는 걸 두려워할 것 읎어. 애답지 않다는 소리는 안 할 기야. 애답다느니 뭐니는 어른이 만든 환상이니까. 모두 각자 알아서 있으면 되는 기야. 다만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어른이고 뭐고 읎다. 그러니 니가 아무리 노력해서 좋은 어른이 되려 해도 괴롭고 쪽팔리는 일을 반드시, 틀림없이 겪게 될 기야. 그건 피할 수 읎지. 그러니까, 그때를 위해 비축해 두라. 어릴 때 잔뜩 쪽팔리고 폐를 끼치고 혼나고 일일이 상처 받으면서 그렇게 또 살아가는 기야."            p.260~261

 

<사라바>, <우주를 뿌리는 소녀> 등으로 만났던 니시 가나코의 이 작품은 지난 달에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개봉했다. 영화로 보면 니쿠코와 기쿠코의 확연히 다른 외모와 성격이 더 두드러지는데, 너무 밝고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니시 가나코는 '항구에 있는 고양이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로 여행을 가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 여행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여행의 목적이었던 고양이는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지만, 이시노마키시 주변 항구를 부지런히 돌아보고, 항구에서 작은 고깃집 한 채를 발견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보낸 시간을 토대로 이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아마도 니쿠코가 일하는 항구 근처의 고깃집도 여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니쿠코에게 모든 것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말하고 싶은 건 전부 말해 버리고, 졸리면 그냥 잔다. 다른 사람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반성도 물론 없다. 그저 생긴 그대로, 니쿠코 그 자체로서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비극을 겪어도 퉁퉁한 볼에 발그스름한 복스러운 얼굴로 비장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이지만, 이상하게 사랑스럽다.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것도 서툴고, 분위기를 읽는다거나 상황을 확인한다거나 그런 게 전혀 없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전력으로 니쿠코'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성가신 인간 취급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속아 넘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쿠코는 슬픔이나 절망의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매사에 엉망진창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의연하게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니쿠코의 유쾌한 매력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을 니쿠코를 그려 보면서,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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