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바바라 포어자머 지음, 박은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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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항상 옳다. 언제나 옳다. 그리고 감정은 합리화를 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무시될 수도 없다. 어떤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자신의 신념이 미리 적어둔 '숫자'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바로 그 색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p.51~52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슴 위에 코끼리가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면 어떨까. 당연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코끼리가 너무 무거우니까. 그렇게 어둠 속에 누워 모든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인생은 얼마나 허무한지, 나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의 언론사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기자 바바라 포어자머는 이 책에서 자신이 30여 년간 앓고 있는 우울증을 '코끼리'에 비유한다. 우울증을 비롯해 가면증후군, 감정표현불능증, 번아웃 등 자신의 경험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 모두 우울과 무기력, 공허함이 만연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적절한 치료를 방해하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고, 현대인과 우울증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고,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준다. 실제로 저자는 수십 년째 한 달에도 몇 번씩 편두통 발작에 시달리며, 약물과 심리치료가 필요한 심한 우울증도 반복적으로 겪어 왔다. 어느 쪽이든 우울증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마치 일상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삶을 살아내는 것, 어떻게 하면 계속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우울증을 앓든 말든 상관없이 이따금 좋지 않은 날들을 보낸다. 잠이 부족하거나 배우자와 싸우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슬프거나 미래를 불안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혹은 다른 이유에서) 가끔 다른 이를 불친절하게 대하기도 하고,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평소만큼 많은 일을 해내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냥 가끔 산만하거나, 게으르거나, 심술궂거나, 다른 방식으로 불완전하다. 아파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p.274~275

 

언제부턴가 우울증을 겪는 이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우울증의 치료 과정에 대한 책이 많아졌다. 우울증을 겪어 본 적도 없고, 주변에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경우를 접해본 적도 없는 나는 주로 이러한 책들을 통해 우울증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혹은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우울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울증은 특별한 계기 없이 걸릴 수 있고, 현재 괜찮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으며, 누구라도 아무런 예고 없이 겪을 수 있는 것이었다. 우울증이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뇌에 영향을 미쳐서 흥미의 감소, 집중력 저하, 사고력 감퇴, 괴로움과 절망감, 그리고 건망증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우리가 이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울증을 폐렴이나 위장병처럼 평범한 질환처럼 여기지 않은 것이 사회적 시선이고, 정신적 질병도 육체적 질병처럼 평등하게 다룰 수 있게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 현실이다. '우울증이 진짜 병이 아니라는 편견'부터 버릴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자기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조용하고 울적한 아이였다고 한다. 16살 때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이대로 죽으면 어떨까 상상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이후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출산의 과정을 겪으며 엄마가 되었고, 직업적으로도 성공했지만 우울증은 여전히 함께였다. 우울증은 '감정'이 아닌 '질환'이기 때문에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녀의 상태는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부모가 이혼했던 것도 아니고, 구타, 학대, 폭력, 방치 등을 경험한 적도 없었기에 심각한 우울증에 걸릴 권리가 없다고, 우울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제야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알레르기나 당뇨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자신도 그냥 그런 것이라고, 과거에 기인한 이유 같은 걸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아직 우울증을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나에게도 무기력이 삶을 덮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이 책과 함께 중요한 건 그저 삶을 살아가는 거라고 말해줘야겠다. 누구나 우울할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낼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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