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0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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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행하고도 벌받지 않는 가장 좋은 경우와 불의를 당하고도 보복하지 못하는 가장 나쁜 경우의 중간인 셈이지요. 양쪽 극단의 중간인 정의가 좋은 것이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불의를 행할 힘이 없는 사람들이 불의를 당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입니다. 불의를 행할 수 있는 진정한 남자라면 불의를 행하지도 당하지도 못하게 하자는 계약은 맺지 않을 겁니다. 제정신이라면 말이지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의 본질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이요 정의의 기원입니다.              p.71

 

오래 전 '러셀 서양철학사', '틸리 서양철학사' 등의 책을 읽을 때 흥미로웠던 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사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인데, 스스로 전혀 글을 쓰지 않았지만 제자 플라톤을 통하여 서양 철학의 전체 발전에서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발휘한 진정한 사상가였으니 말이다. 플라톤의 대화록은 스승과 제자의 사유가 결합되어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한다. 플라톤이 썼던 글은 모두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그가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 만나게 된 <국가>도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처럼 소크라테스가 전날에 케팔로스의 집에서 나눈 대화와 논의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1권에서는 정의가 악덕이자 무지인지 아니면 지혜이자 미덕인지 살펴본다.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와의 대화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 즉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빌린 것을 돌려주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런 일이 때에 따라 정의가 되기도 하고 불의가 되기도 하는 건지에 대해서 의견을 물은 것이다. 이 질문은 케팔로스의 아들 폴레마르코스가 이어 받아 대화가 진행된다. 친구란 무엇인지, 좋은 사람이란 어떤 의미인지, 친구인 나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고, 적이지만 좋은 사람에게는 해를 입히는 게 정의라고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는 쉬지 않고 계속된다. 2권부터는 대화 상대자가 아리스톤의 아들이자 플라톤의 작은 형인 글라우콘과 플라톤의 큰형인 아데이만토스로 바뀌어 10권까지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정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여러 유형의 불의한 국가들을 살펴보고, 국가의 통치자로 어떤 인물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가 말했네.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의 협력자인 법도 그것을 바라는 게 분명하네. 그래서 아이들을 다스릴 때 처음에는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우리에게 있는 가장 훌륭한 부분으로 그들의 내부에 있는 가장 훌륭한 부분을 보살피지 않는가? 우리 안에 있는 수호자와 통치자가 우리를 대신해 아이들의 내부에도 있게 하는 것이네.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내부에도 바른 정치체제가 세워져야 그들이 자유로울 수 있다네."                p.475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의 50번째 책으로 나온 <국가>는 가독성이 매우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서양 철학이라고 하면 다소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할 거라고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굉장히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스어 원전을 직접 옮긴 완역본이고, 사변적이고 복잡다단한 원문을 세심히 다듬었으며, 여러 번의 교정을 통해 최대한 원문을 존중하면서도 가독성 높은 편집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주가 366개나 되는데도 본문을 벗어나지 않고 해당 페이지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더욱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후반부에 수록된 18페이지의 세심한 해제 또한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정의가 불이익을 당하는데, 정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중에 누가 더 행복한지'에 대한 질문자체가 흥미롭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는 불의를 행하는 것이 좋고, 불의를 당하는 것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완벽한 불의를 버려두고 정의를 선택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불의를 행하더라도 고상함으로 위장하는 데 성공한다면, 누가 진정으로 정의를 존중하려고 하겠느냐는 말이다. 이는 2,4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당대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근본적으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후세 사람들은 <국가>에 '정의론'이라는 부제를 붙이기도 했는데, 개인의 정의든, 국가의 정의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중심 주제가 '정의'인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개인의 정의를 살펴보기 위해 이상적인 국가와 불의한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들을 차례대로 고찰하며 정의를 행하는 것 자체가 더 좋고 행복한 이유에 대해 치밀하게 논변한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는 내내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사유할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플라톤 철학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현대지성 클래식의 <국가>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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