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기쁨 - 흐릿한 어둠 속에서 인생의 빛을 발견하는 태도에 관하여
프랭크 브루니 지음, 홍정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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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을 겪고 안개 같은 시야를 경험하며 한동안 내면의 날씨를 감당할 방법을 모색하다 이 근본적 진실을 새로이 음미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앞으로 매끄럽게 나아가는데 나만 삐걱거리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감당하고 있다는, 남들은 토끼풀에 안착했는데 나만 가시덤불에 들어섰다는 믿음. 자기 연민은 대개 이러한 망상에서 나온다.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실은 모든 사람이 언제라도 강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통을 헤쳐나가기 위해 과거에도 노력했고 현재에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p.152

 

이 책의 저자인 프랭크 브루니는 30년 이상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아왔다. 2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간판 칼럼니스트였고, 백악관 담당 기자, 이탈리아 로마 지국장을 역임하고 음식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는 시련이 그를 찾아 온다.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의사는 그에게 손상된 눈이 호전될 가능성도 없으며, 반대쪽 눈이 손상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고, 오랜 연인과 이별하는 등 연이어 불행이 닥치게 된다.

 

물론 누구나, 언제라도 강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그런 상황에서 왜 하필 나인가? 억울해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어째서 나라고 아니겠는가? 라고 말이다. 좌절하고,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시련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닥쳐 온 불행들을 계기로 그 동안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상실'이 만들어준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그리고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균열들과 가시덤불에 대해서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역경과 장애물, 고통, 절망을 삶 속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한 결혼 생활, 자폐증 아들, 자전거 사고, 10여 차례의 수술, 여덟 살 난 아들의 죽음, 심신을 망가뜨리는 두통 등등... 참혹한 사고를 경험했거나 끊이지 않는 통증을 달고 살고 사는 이들이 가까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그들의 삶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그들의 낙관론과 쾌활함이 실로 경이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간의 확신이 무너지는 불안한 인생의 변화를 겪어본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나는 구체적인 단어는 아니더라도 아이디어들이 거듭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은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되새겼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새로이 떠올렸다. 나는 이러한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도 자신을 드러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한쪽 눈이 손상되고 다른 눈마저도 손상될 위기에 처했음을 글로 썼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당신에게 활짝 열린다.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고백을 듣게 되고, 나 자신의 여정은 다른 사람들이 공유해준 여정을 통해 타당성을 얻는다.          p.287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 저자는 너무나 귀중하고 빛나는 것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동안 다른 데 열중해 있거나 정신이 팔려서, 또는 심지어 게을러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도보로 불과 몇 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던 센트럴파크의 가치와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던 수천 권의 책들의 의미는 삶의 풍부함을 넘어서 새로운 능력을 경험하고 단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력을 점점 잃어 가면서 세상이 흐릿해지는 것은 여러 불편한 상황들과 일상 속 사소한 일들을 절망으로 이끌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 독자인 내가 전부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여러 감각 중에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그 불편함과 막막함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스스로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란 누구에게나 견디기가 쉽지만은 않을 테니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삶이 시다 못해 쓰디쓴 레몬을 내민대도 당신은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얻은 큰 배움이었다.'라고. 그러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존중하지만, 과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이 꽤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인생의 고비에 지지 않고, 버티고, 이겨내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힘든 시련이 닥쳤을 때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은 불행에 잠식되지 않도록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낙관들을 최대한 그러모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저자의 결심과 앞으로의 삶을 응원한다. 삶의 역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그의 삶이 계속 반짝거리기를,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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