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작별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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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의사는,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내 환각이라고....."
─아마 그 말이 옳을 거야. 나는..... 네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너는 가이토야!"
다케시는 윗몸을 벌떡 일으키고 왼손을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가이토와 마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이토는 낮게 웃었다.
─내 영혼이 네 왼손에 깃들었다고? 오컬트 같은 얘기네.       p.21

 

다케시와 가이토는 똑같은 얼굴을 한 쌍둥이 형제였다. 줄곧 함께 자랐고, 서로에게 의지했던 분신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4개월 전, 다케시는 형 가이토를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우고 산길을 달리던 중이었다. 산 정상의 전망대에 가서 할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꼽친구라 셋이 늘 어울렸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형과 두 사람이 사귀는 중이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된 거였다. 그런데 길고양이를 피하려다 핸들을 놓쳐 가드레일 바깥쪽, 절벽으로 형이 떨어지고 만다. 마지막까지 형의 손을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나지만, 결국 형이 손을 먼저 놓았고 그대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형 가이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바로 자신의 왼손에서.

 

가이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왼손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움직였기에, 다케시는 형이 자신의 왼손에 깃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에일리언 핸드 신드롬’이라는 무슨 SF영화 제목 같은 이름의 질환이라고 진단했고, 뇌질환이나 정신질환을 계기로 한쪽 팔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병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억지로 병원에 입원시키려는 가족들을 피해 가출을 한 다케시는 도쿄에 도착하는데, 우연히 살인 사건 현장과 마주하게 되고 용의자가 되어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다케시와 가이토는 살인사건 용의자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범인을 찾기로 하는데, 이성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난 가이토와 권투를 해서 운동신경이 좋은 다케시는 서로 협력하며 도피행을 시작하지만 현실이 만만치가 않다. '사파이어'라 불리는 마약과 수수께끼의 여성, 뒷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과 그 조직을 뒤쫓는 형사까지 다케시와 가이토 형제에게 계속해서 위기가 닥쳐온다.

 

 

 

이 거리에도 완전히 익숙해졌네. 사파이어 거래에 입회한 날 심야, 지하철 히비야선 개찰구를 나와 지상으로 올라온 다케시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오가는 롯폰기 교차로를 바라봤다. 아야카에세 이끌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기이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마음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간질이는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도시의 흐릿한 공기에 살짝 혐오감까지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도쿄를 동경했는데.           p.202

 

몇 개월 전만 해도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학교에 다녔던 다케시는 도쿄에 도착해 한 남성의 시체를 발견한 뒤 삶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살인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도망치다가, 범인을 찾으려다 보니 어느새 불법 약물 매매에 손을 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사파이어에 중독된 한 소녀를 도와주려고 약물을 건넨 것이 오히려 소녀를 죽게 만들고, 경찰 수사망은 점점 다가오는데다, 약물 제조 루트를 캐다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 와중에 조직을 쫓는 형사는 다케시에게 스파이 역할을 떠맡기고,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인해 결국 다케시까지 사파이어에 중독이 되고 마는데... 끝이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게 되는 다케시는 과연 범인을 찾고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치넨 미키토는 이 작품에 대해 "기존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경지를 시도한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의사로 활동했다는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 동안 병원과 의료 현장이 배경인 작품들이 많았다. <차가운 숨결>,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가면병동> 등 그 동안 만나왔던 작품들 모두 자신만의 장점을 잘 살려 생사의 생사의 갈림길을 매일 마주하는 의사로서의 고뇌와 병원에서 지내는 환자들의 모습을 현실감있게 그려냈었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작가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도전한 본격 미스터리 <유리탑의 살인>이라는 작품도 흥미롭게 읽었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동생과 죽은 형이 한 몸을 공유하면서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신감각 미스터리이다. 기존 작품들이 의학 미스터리, 감동 판타지, 로맨스 등 가슴 뭉클한 휴먼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이야기들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시종일관 상당히 무겁고, 어둡다. 그럼에도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인간다움과 구원의 손길을 잊지 않는다. 형제의 유대 관계를 주요 플롯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조차 전혀 평범하지가 않다. '외계인 손 증후군'이라는 독특한 병을 소재로 동생에게만 들리는 죽은 형의 목소리, 동생의 왼손에 깃든 죽은 형의 영혼, 그리고 사고 당일의 숨겨진 진실과 죽은 형의 진짜 의도 등 미스터리한 장치를 잘 배치해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준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미스터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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