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작가
알렉산드라 앤드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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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플로렌스 대로가 천재라는 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작가가 되려 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보낸 그 몇 년 동안, 플로렌스 대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그 황홀감을 사랑하게 되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자신을 잊고, 원하는 누구든 될 수 있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 이 일을 잘만 하면 그녀 자신의 인생도 드디어 가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니.           p.73

 

작가 지망생인 플로렌스는 뉴욕의 유명 출판사에 입사했지만 다른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늘 자신이 사는 세계 너머의 세상을 꿈꿨지만 출신도, 외모도, 능력도 평범했던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될 기회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유부남 편집자와의 하룻밤을 계기로 그의 가족에게 접근해보려다 오히려 직장에서 쫓겨 나게 되고 열여섯 이후 처음으로 무직자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 그녀에게 한 편의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소설가의 조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렇게 플로렌스는 비밀에 싸여 있는 작가, 헬렌의 보조가 되어 함께 지내며 일을 도와주게 된다.

 

그들은 자료 조사를 위해 모로코로 취재 여행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헬렌이 죽게 된다. 사고 현장에서는 플로렌스 혼자 발견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헬렌이라고 알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어젯밤 플로렌스와 헬렌은 식당에서 낙타 고기와 위스키를 마셨다. 그런데 그 이후로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경찰의 설명에 차가 바다에 빠졌고, 운 좋게도 늦게까지 바다에 나가 있던 한 어부가 목격해 플로렌스를 차에서 끌어내 구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다니, 그녀는 황당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함께 발견된 소지품은 전부 헬렌의 것뿐이었다. 경찰과 사람들이 플로렌스를 헬렌으로 착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헬렌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경찰은 차 안에 한 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헬렌은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게다가 헬렌의 즉음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그녀밖에 없었다. 익명의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해 아는 것도 자신과 에이전시, 단 두 명뿐이었다. 세상이 궁금해하는 천재 작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플로렌스는 헬렌이 될 작정이다.

 

 

 

플로렌스는 자신이 입고 있는 원피스를 내려다보다가 소리 질렀다. "그래서 뭐? 난 내 인생이 싫었어! 더 나은 인생을 원했다고.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더 나은 인생, 스스로 만들어야지. 훔칠 게 아니라."
플로렌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헛소리. 모두가 도둘질을 한다, 헬렌도 마찬가지. 그녀는 제니에게서, 그리고 그녀에게 베르디와 샤토네프 뒤 파프를 소개해준 사람에게서 더 나은 인생을 훔쳤다.             p.362

 

출판사와 에이전시, 익명의 베스트셀러 작가와 작가 지망생을 등장시켜 문학계의 디테일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20개국에 판권이 계약되고, 유니버설 픽쳐스에서 곧 영화로 만들 예정인 작품인 만큼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고 흥미진진하다. 더 나은 인생을 꿈꾸는 것,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크게 변화 없이 비슷비슷한 경로를 따라 진행된다. 원하는 누구든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은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가면서 점차 사라지고,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꿈꿔왔던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까. 누구든 그 삶을 훔치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되지 않을까.

 

플로렌스라는 주인공이 도덕적이고, 성실한 호감형의 인물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녀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더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을 질투하고, 닮고자 하는 욕망은 그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일 테니 말이다. 변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 왔지만 변하는 것은 없고, 삶의 행로를 바꿔보겠다는 일념으로 나아가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던 자신의 인생이 완벽하게 달라질 수 있는데, 그저 거짓말 몇 개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 기회를 정직하게 외면하고, 다시 평범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헬렌 행세를 시작한 플로렌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상상도 못할 반전이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자신이 던져버린 양심과 도덕심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그렇게 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매혹적인 상상을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를 통해 구체화시켜 보여준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구성, 반전과 캐릭터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새로운 누군가가 되고픈 욕망을 가져본 적이 있는 당신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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