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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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때 시청하는 교육 자료 가운데 자동 주행 소형 로봇청소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의 영상이 있다. 딱 원반처럼 생긴, 말이 자동 주행이지 일일이 리모컨으로 조작해야 하고, 기능이라고는 가동 상태를 나타내는 삐 소리를 몇 종류 낼 뿐인 제품인데도 이름을 지어주는 이용자가 있나 하면, 그것이 내장 브러시를 샥샥 움직이면서 먼지를 모으며 나아갈 때 졸졸 따라 다니는 이용자도 있었다. 로봇청소기의 반려동물화다. 애정과 공감, 이건 인류의 고질병이다.            -'안녕의 의식' 중에서, p.183

 

팔순이 넘은 노인 다쓰조의 하루 일과는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두고, 동네를 한 시간 동안 산택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런데 어느 날 산책 중에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어린아이가 잔뜩 굳은 얼굴로 눈을 번들거리면서 방범 카메라를 마구 두들겨대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더욱 수상했던 것은 아이의 얼굴이 장난을 치거나 재미있어하는 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무서운 상대와 대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얼마 뒤 동네에 있는 방범 카메라 위치가 자꾸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근처 쇼핑몰 주차장에서 일어난 승용차 추락 사고를 비롯해서 뭔가 미심쩍은 사고가 일어난 장소에 모두 방범 카메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과연 방범 카메라가 사람들에게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이 작품은 <전투원>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이야기이다.

 

<나와 나>라는 작품에서는 문구 회사에 다니는 미혼인 40대의 '나'가 등장한다. 스물셋일 때 만났던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했었지만, 막상 동거해보니 가치관 차로 인해 일 년도 못 가서 헤어지고 지금은 아예 결혼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엄마의 1주기가 지나고, 엄마와 함께 살던 오빠 가족도 떠나 이제 빈집이 된 본가에 가보기로 하는데, 그곳에서 '나'는 뭔가 익숙한 모습의 여고생과 마주한다. 그 여고생은 삼십 년 전의 나, 열다섯 살의 나였다. 자동판매기에서 음료를 뽑았을 뿐인데 타임슬립을 해서 그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열다섯의 '나'는 "마흔다섯 살에, 나 아줌마처럼 된다고?"라며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다. 결혼도 하지 않은 독신에 평범한 문구 회사에 다니며, 연봉은 그럭저럭, 아파트에 살지만 자가는 아닌 현재의 모습을 설명해주니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실망한 것이다. 어린 '나'도 하루하루의 시간을 쌓아 마흔다섯 살이 될 무렵에는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만 말이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회귀자'는 되살아난 사자다. 사망한 특정 개인을 꼭 닮은 의체에 고인의 인격 모듈을 이식한 인공지능을 탑재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죽었던 인간이 되살아나 세상에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말이야, 우선 인격 모듈이란 것이 간단치가 않아서, 살아있는 인간의 성격, 개성, 행동 특성을 백 퍼센트 재구성할 수는 없거든. 적어도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해... 인공지능 자체의 능력도 인간의 뇌의 움짐임에는 한참 못 미치고."          -'보안관의 내일' 중에서, p.430~431

 

미야베 미유키가 작가 생활 30여 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SF 소설집이다. 미스터리소설과 괴담, 판타지, 시대소설을 주로 써왔기에,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써온 SF 소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이 소설집에는 대안가족, 아동학대, 무차별 살상사건, 노인문제, 감시사회 등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학대 받은 아이와 그 부모를 구제하는 ‘마더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기억에 없는 친부모를 만나게 된 열여섯 소녀, 스스로 사라졌다 움직이는 방범 카메라가 인간의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노인, 타임슬립을 해서 지금 시대로 온 10대의 나와 마주하게 된 40대의 나, 로봇 폐기 수속 창고에서 일하며 로봇에게 가족 혹은 친구와 같은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인물의 이야기 등등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현실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근미래의 풍경이 펼쳐진다.

 

미야베 미유키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로봇청소기에게 다정하게 격려를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표제작인 <안녕의 의식>이라는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SF적인 상상력이 일상 속 표면에서부터 비롯되었기에 더욱 섬세하고, 다층적인 작품들이 그려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인간 본질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미야베 미유키가 그려 내는 상상력의 세계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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