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휘청거리는 삶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
캐서린 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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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이제껏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니, 이미 깨닫고 또 깨닫기를 반복했었다. 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맞서고 고통받고 또 애도했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새로웠다. 그 순간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절실히 느꼈다. 한 아이의 엄마인 내게 세상은 결코 오롯이 나 자신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나로 돌아가야함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p.36

 

캐서린 메이의 전작인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책을 아주 인상 깊게 읽었었다. 마흔 번째 생일을 코앞에 둔 어느 날, 갑작스런 남편의 맹장염, 건강 문제로 인한 실직, 아들의 등교 거부 등 연거푸 닥쳐온 시련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자신이 ‘인생의 겨울’ 한가운데에 서 있음을 직감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겨울을 견뎌내는 것을 담담히 기록한 책이었다. '윈터링(wintering)'에 대한 지적이고도 서정적인 사색의 풍경들이 페이지마다 밑줄 긋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책이었다.

 

이번에 만난 그녀의 신작은 서른 아홉에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고, 주말마다 험준하고 가파른 해안길을 수백 킬로미터 걷기 시작하며 자신의 상처와 인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여정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우연히 숲속에서 길을 잃은 경험을 통해 두려움보다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영국의 가파르고 험준한 트래킹 코스를 걷기로 다짐하게 된 것이다. 녹초가 될 때까지 가파른 해안길을 오르며 그 동안의 삶을 반추하고 또 반추하는 과정은 놀랍도록 감동적이었다. 한 번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살아 왔는데,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낯선 진단으로 인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자폐인에게서 경험하는 사소한 불편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경험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거듭해서 말한다. 설명은 몇 번이고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 전에는 한 번도 단언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단언한다. 나는 자신을 넘겨버리는 습관을 버리고 있으며, 내가 얼마나 자주 압도당하는 느낌을 느끼는지, 평범한 사건들로 인해 얼마나 극단까지 몰리는지를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이해한다. 사실, 공감한다. 누구나 그게 어떤 기분인지 어느 정도는 안다.          p.296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나서야 자신에게 자폐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애초에 성인이 되어서야 자폐증 진단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에 없던 증상이 성인이 되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성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진단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적인 성향과 힘든 상황에서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어 버린다거나, 엄마가 되어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도망가고만 싶어 하는 마음들이 모두 그저 예민하고 민감해서가 아니라 아스퍼거 증후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니 말이다. 아마도 그 동안 살아온 전 생애를 부정하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서린 메이는 피하지 않고, 더 늦기 전에 자신의 마음속 울음을 들여다보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주말마다 험준한 해안길을 걸으며 깨닫는다. 여태껏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삶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고 애쓰며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을 위해 억지로 스스로를 감추고, 속이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잘 하면서, 스스로를 다정하게 돌보는 것은 서툰 사람들 말이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느라 '나'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으려는, 불행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23년 나는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그려보았다. 조금 더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타인을 위하는 것만큼 내 마음도 돌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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