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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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긴 죽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말한 대상은 물론, 인공지능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속의 이후였다.
"내가 죽어? 나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 그럼 여기 있는 나는 뭐야?"
"그건 나를 위한 착각이야." 나는 다시 한번 내 속에 존재하는 이후에게 말했다.
"착각? 그럼 여기 있는 나는 뭐야?" 인공지능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구역질을 느꼈다. "너는 진짜 네가 아니야."          p.117

 

이야기의 배경은 2040년대, 현실과 사이버스페이스가 한데 섞이고 인류가 기계와 어울려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유비쿼터스 월드의 뉴 서울이다. 아내 '이후'를 암으로 먼저 떠나 보내고 남겨진 '홀'은 사람과의 연락도 끊고, 일도 손에서 놓은 채 슬픔과 그리움의 나날을 보낸다. 그렇게 이 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의 부재에 조금은 익숙해졌고, 불현듯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프리랜서 인터뷰어로 일하던 그는 한 매거진의 편집장에게 연락해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보, 나야."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그에게 도착한다. 스팸 광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홀로그램 메시지로 아내의 얼굴이 나타난다. 아내의 목소리는 내가 보고 싶지 않냐고, 나를 보러 오려면 이곳으로 찾아 오라고. '홀'은 아내가 죽기 전 자신의 기억 전체를 바이앤바이 서버에 제공해 인공지능 아바타를 준비해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사가 도시 곳곳에서 급증했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사실 연쇄적인 자살 추정 사건들이지 딱히 의문사라 이를 까닭은 없어 보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현장에 브로핀 헬멧이 있었다는 거다. 브로핀은 가상현실을 이용해서 고통을 통제하는 것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을 지키며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해당 기술을 이용해 바이앤바이라는 회사에서는 죽은 사람의 마음과 기억 전체를 옮겨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날 수 있는 가상공간 '욘더'를 만들었다. 그리고 슬픔에 빠져 약해진 사람들, 매일 고인의 아바타를 만나러 가서 거짓 대상과 대화를 하는 이들을 초대한다. 고인의 입을 통해 나와 함께 여기 들어와서 살지 않겠냐는 말을 듣게 된 이들은 고민한다. 죽은 가족과,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를 꿈꾸며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죽은 아내 '이후'를 다시 만나게 된 '홀' 역시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린 서로를 잃을 수도 있어." 이후가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 안 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꾸만 되풀이되는 기억이 아니라 진짜 망각, 진짜 오블리비언일지 몰라. 당신은 여기 자신의 의사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이제는 나의 의사에 의해서 머물고 있는 거야. 내가 저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 사랑한 것은 당신에게 넘치던 삶의 활기 때문이었지.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살아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당신은 이미 죽었어. 더 죽을 필요는 없지."            p.351

 

이준익 감독, 신하균, 한지민 주연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의 원작 소설이다. 2010년 일억 원 고료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번에 전면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영상화를 기념해 드라마 포스터가 담긴 디자인으로 새롭게 단장했고, 2022년 감각으로 문장과 표현을 다듬고 개정판 작가의 말도 수록했다.

 

언젠가 방송에서 죽은 아내를 그리는 남편이 VR을 통해서 아내를 만나는 장면을 봤던 적이 있다. 4년 전 아내를 잃고 다섯 아이와 남겨진 남편은 현재 구현 가능한 기술로 죽은 아내와 애틋한 '단 하루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그는 가상의 공간에서 아내와 만나 함께 마주보고 눈을 마주치며 손을 잡고 춤을 추었고, 아내와 자주 찾던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모션캡처 기술을 이용해 배우의 동작과 표정을 3D 모델에 입히는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굿바이, 욘더>는 사랑했던 대상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있다고 믿고 싶어지도록 하는, 죽은 이의 기억과 성격을 고스란히 지닌 인공지능이 진짜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다. 브레인 다운로드를 통해 들어가는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공간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음을 초월해서 같이 할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일까? 한번도 불멸의 삶을 꿈꿔 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욘더라는 현실을 초월한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육체가 없는 인간, 다운로드된 정신을 통해서 누구나 가장 행복한 상태로 지낼 수 있다면, 나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정말 이런 상상의 공간이 가능하게 될까. '오직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세계, 욘더'가 던지는 질문은 이 작품을 읽는 이들에게 어떤 대답으로 돌아올지도 궁금해진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 소설과 드라마가 달라지는 부분도 있다고 하니, 두 작품을 함께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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