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아랫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할머니를 남겨 두고 떠난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할머니가 내 뺨에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네가 나를 떠나는 건 불가능해. 나는 네 일부란다. 너는 나와 내 이야기를 지니고 새로운 행성으로, 그리고 수백 년 미래로 가는 거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겠다.”         p.13

 

핼리 혜성의 궤도 이탈로 멸망을 앞두고 있는 지구, 부유한 사람들과 선택된 이들만 새로운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올라탈 수 있다. 열두 살 소녀 페트라는 사랑하는 할머니를 지구에 남겨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과학자인 엄마, 아빠와 동생 하비에르와 함께 어쩔 수 없이 우주선에 탑승한다. 여행을 하며 잠들어 있는 동안 지구에서의 기억은 모두 삭제되고, 각자가 행성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식이 뇌에 직접 주입된다. 그렇게 2061년 7월 28에 지구를 떠난 그들은 2442년 새로운 행성 세이건에 도착한다. 380년 후에 깨어난 페트라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기억이 삭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각자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며 살아간다. 페트라는 식물학 및 지질학 전문가 제타1을 연기하며 함께 우주선에 올랐던 가족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분 다 기억 삭제에 실패해서 재프로그래밍을 했지만, 그것마저 삭제로 두 분 모두 2277년에 제거되었다는 기록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삭제된 것이 페트라의 부모들만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페트라는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자신 역시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는 걸 저들이 눈치 챈다면 사령관이 그녀를 제거하든지 다시 프로그래밍하려 들 것이다. 페트라는 같은 방을 사용하는 제타 대원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과 함께 이곳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쿠엔토가 뭐야?"
내가 안 된다고 말하기도 전에 수마가 물었다.
긴장해 배가 옥죄어 왔다. 이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바라건대, 지구의 이야기가 저 아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가족이 누구였는지 상기시켜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억한다 해도, 이 방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겠다고 마음먹지 않기를 나는 기도했다. 모두 나를 지켜보며 기다렸다. 이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p.229~230

 

행성 이주 계획의 주체인 '콜렉티브'는 지구와의 영원한 단절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한다. 갈등, 기아, 전쟁으로 가득 찼던 세계에 대한 기억을 단 하나도 가져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되었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들은 지구의 기억들을 모조리 삭제해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지구에서 수백 년의 시간을 거쳐온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어버린 채 오로지 임무를 위해서만 움직이며 산다. 과연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그 속에서 페트라는 진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 작품은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이다. 1994년에 뉴베리상을 수상한 로이스 라우리의 <기억 전달자>를 잇는 SF 명작이라고 극찬을 받았는데, 과거의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기억 전달자'가 된다는 점이 명맥을 같이 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페트라는 이야기꾼 할머니 덕분에 쿠엔토(스페인어로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이야기가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종이로 만든 책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고 있다. 극중 '이야기 없는 세상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라는 말처럼, 이야기를 사랑하고, 이야기의 마법 같은 힘을 믿는 다면 가슴 뭉클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제 머나먼 과거가 된 지구를 유일하게 기억하는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의 눈부신 여정을 함께 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