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질문들 - 마거릿 애트우드 선집 2004~202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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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입니다. 문학은 인간 상상의 발설 또는 표출입니다. 문학은 생각과 감정의 어둑한 형태들 - 천국, 지옥, 괴물 천사 등등 - 을 밝은 곳에다, 그것들을 훤히 살피면서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며 그 욕구의 한계는 어디인지를 보다 면밀히 이해할 수 있는 곳에다 풀어놓습니다. 상상을 이해하는 것은 더 이상 취미나 의미가 아닙니다. 필요입니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은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죠.           p.40

 

이 책은 2004년 중반부터 2021년 중반까지 여러 매체에 발표한 에세이 가운데 62편을 엄선해 한 권으로 엮었다. 작품과 글쓰기를 비롯해 문학, 환경, 인권, 페미니즘 등 애트우드가 평생 헌신해온 주제들이 다양한 형식(강연, 서평, 논설, 추도사 등)의 글로 수록되어 있어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무색하게 술술 읽힌다. 애트우드는 소설과 단편과 시를 쓰면서도, 서평도 계속 썼고, 기사와 강연으로도 글을 써왔다. 지난 20년간 90퍼센트의 원고 청탁을 거절했음에도 매년 평균 40편씩 에세이를 썼다고 하니 대작가의 성실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시녀 이야기>, <증언들>을 비롯해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들은 단단히 발 딛고 서 있는 판타지이자, 세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으며, 그 의미와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서사 자체만으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상상력의 끝을 보여 주었다. 애트우드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어 왔다면, <타오르는 질문들>은 절대 놓치면 안 되는 보물 같은 책이다. 애트우드의 수많은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글을 쓰는 과정,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총망라되어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애정 표현까지 만날 수 있는 책이니 말이다. 특히나 '미친 아담' 3부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니 이 작품을 좋아한다면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다. 이 책의 1부가 '미친 아담' 3부작의 첫 번째 책 <오릭스와 크레이크>의 홍보차 여행 중인 시점의 글들이고, 2부가 '미친 아담' 3부작의 세 번째 책 <미친 아담> 집필에 매진하고 있던 시기라고 한다. 특히 2부에서 그 작품을 왜 썼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집필하는 과정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저는 제가 때로 번역가들에게 악몽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저의 빌어먹을 책들을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 두 배로 감사합니다. 때로는 뺄 게요. 저는 언제나 번역가들에게 악몽입니다. 저는 (번역이 불가능한) 말장난과 (번역하기 난감한) 농담을 즐겨 쓰고, 특히 유전자 조작 생물과 상상의 소비재 영역에서 신조어를 잔뜩 만들어냅니다. 제가 살인에만 역점을 두면서 의젓한 표준영어만 쓴다면 번역가에게 얼마나 좋을까요? 플롯 위주의 책들이 번역하기에는 가장 쉽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역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p.341

 

애트우드가 앨리스 먼로에 대해 쓴 글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앨리스 먼로는 체호프와 자주 비교되지만, 어쩌면 세잔과 더 닮았다고 하며 이유는 지독히 익숙한 사물이 낯설어지고 어둠 속에 빛나며 신비로워질 때까지 그리고 또 그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지극히 소설가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와 닿아 밑줄 긋고 싶어지는 문장이었다. 어슐러 k. 르 귄의 부음을 듣고 이상한 환영을 본 경험담을 풀어낸 글에서는 뭉클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애트우드가 늘 소설과 연극의 등장인물이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 그리고 소설을 읽을 때 옷에 주목해 깐깐하게 따진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연관해서 풀어내는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여러 다른 책들이 실타래처럼 엮여 사유를 확장시켜주는 경험을 좋아하는데, 애트우드의 글들은 여러 다른 책들을 찾아서 읽고 싶게끔 하는 부분들이 많아 행복한 시간이었다. 20대 초반에 데뷔한 이래 여러 문학 장르를 아우르며 80대인 지금까지도 활발히 창작을 하고 있는 마거릿 애트우드는 자신의 에세이 인생을 파란만장했다고 말한다. 서평과 서문, 그리고 부고 기사까지 쉬지 않고 썼으며 기후 위기 이슈가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과 동시에 해당 주제를 쓰는 일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니 현존하는 가장 치열한 작가이자 독자로서 세계에 던지는 '타오르는 질문들'은 당대의 이슈에 대해서 아주 현실적이고도 통찰력있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반려자가 치매 진단을 받고 불안하게 요동하는 노심초사의 시기를 지나, 미국이 절망과 비통의 살얼음판을 걷던 시기를 거치고, 미투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는 진실과 팩트체크와 공정성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글들을 쓰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북 투어를 이어갔으며, 팬데믹 시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른 애트우드의 행보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 더 많이, 더 오래 글을 써주시기를 바래본다. '타오르는 질문들'은 이 두툼한 책을 덮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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