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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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적어도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p.46

 

최근에 허지웅 작가의 신작 에세이를 읽으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이번에는 그의 바로 전작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는데, 사실 이 작품은 2년 전 출간 당시 가제본으로 먼저 읽었었다. 그 2년 동안 팬데믹이 온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당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에세이를 재독하는 경우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별로 없는 편인데, 재미있는 건 다시 읽었을 때 밑줄 긋고 싶은 대목들이 달라지는 건 대부분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점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고 싶은 페이지가 달라져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허지웅 작가가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으로 2년 간의 암 투병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발표했던 작품이다. 2년간의 암 투병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방송을 봤다. 예민하고, 까칠했던 모습들 대신 둥글어지고, 다소 편해진 그의 태도와 말투를 보면서 조금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첫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그 무엇보다도 '버티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명제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6년 뒤, 암 투병을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바로 그것 때문에 그가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맞다. 정말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그걸 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한다. 반면 누군가는 끝내 평가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한다.         p.141

 

살면서 누구나 그런 적이 있을 것이다. 망했는데, 싶은 기분이 드는 그런 순간 말이다. 다시 돌이킬 수 없고, 그 순간을 모면하거나 도망칠 수도 없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그런 기분이 들어 막막할 때 말이다. 이제 나는 끝났다 싶거나, 사는 게 다 지긋지긋해지거나, 그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당신에게 이 책은 말한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살아야 한다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서른 살 이후로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해 본 기억이 없는 그가, 요가를 시작했고 그만두지 않고 열심히 하는 중이다. 해보지 않았던 것이고, 잘 할 수도 없는 것을 지치지 않고 성실하게 말이다.

 

"나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라는 그의 말이 너무도 진정성있게 느껴져서 잠시 먹먹해졌다. 크게 한 번 감기나 열병만 앓고 일어나도, 세상에 다르게 보이게 마련인데 생사를 오가는 시련을 겪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상투적인 위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바른 말만 늘어 놓는 게 아니라 더 인상적이었다. 죽음과의 사투 끝에 삶으로 돌아온 그가 힘겨운 현실에 시름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조언과 오늘도 버티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지금 여기 공동체의 이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의 신작 <최소한의 이웃>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전작인 <살고 싶다는 농담>을 통해 조금 더 개인적인,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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