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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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핑핑 돌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현실과 이어주는 무언가가 끊어져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계속해서 손을 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따뜻한 화면을 쓸어내렸다.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녀는 화면 속에 몇 초간 더 머물렀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미안해." 나의 죽은 아내가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멀어져갔다.            p.55

 

결혼 7개월 차에 접어든 스물다섯 동갑내기 커플 벡과 엘리자베스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모처럼 드라이브에 나섰다. 그들의 목적지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온 인전이 드문 깊은 숲속의 호수였다. 매년 첫 키스 기념일에 그들은 이곳을 찾아 나무에 한 줄씩 줄을 그어 새겨넣었다. 열세 번째 줄을 나무에 새겨넣은 그날, 엘리자베스는 벤의 눈 앞에서 살해당한다. 그리고 8년 후, 뉴욕 빈민가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벡은 이상한 이메일 한 통을 받는다. 벡과 엘리자베스의 이니셜과 함께 나무에 줄이 그어진 횟수만큼 표시된 제목의 그 이메일은 그들의 기념일 '키스 타임'에 링크를 클릭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들만의 기념일과 의식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체 누가 이런 이메일을 보낸 것일까.

 

며칠 후, 벡은 한 대도시 거리의 실시간 스트리트 탬 영상을 전송받고, 영상 속에서 죽은 아내와 마주한다. 화면 속 엘리자베스는 분명 나이 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작은아버지가 신원확인을 했었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 벡이 본 것은 자신의 아내가 틀림 없었다. 엘리자베스가 살아 있는 것일까. 벡과 엘리자베스만 아는 암호로 적인 메세지가 이어졌고, 그 속에는 '그들이 보고 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한편, 엘리자베스가 살해당했던 호숫가에서 백골 사체 두 구가 발견되고, FBI는 벡을 피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대체 벡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만약 엘리자베스가 살아 있었다면 지난 8년간 어디에서 숨어 지낸 것일까? 왜 하필 FBI가 벡을 살인범으로 지목하기 시작했을 때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엘리자베스는 진짜로 살아 있는 것일까?

 

 

 

 

누구도 말하지 않는 비극에 대한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비극을 겪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사실 나는 아내의 죽음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됐다. 모든 불행에는 한 가닥의 희망이 숨어 있다. 물론 내게 허락된 희망은 실로 하찮은 것이었다. 그것이 그럴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평한 거래도 아니지만, 나는 과거와 비교해 확실히 나은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지 제대로 따질 수 있게 됐다. 남의 고통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됐고.               p.128

 

<밀약>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에 국내에 두 권으로 소개되었던 할런 코벤의 초기작이다. 세련된 표지로 옷을 갈아 입고, 새로운 번역과 제목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단 한 번의 시선》에서 공포심을 자극하는 북한 출신 살인병기 에릭 우, 《용서할 수 없는》 《홀드타이트》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 등 지금까지 출간된 작품에서 등장했던 캐릭터들의 과거 행적이 그려져 재미를 더해준다.

 

초점 없는 눈으로 지루한 인생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던 소아과 의사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은 자의 이메일을 받고, 유령을 보게 된 뒤, 두 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로 전락해 버린다. 게다가 경찰의 추격을 받고 도망 다니며 경관을 폭행하고, 악명 높은 마약상에게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하면서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당연히 그 모든 과정은 긴박하고 숨가쁘게 흘러간다. 독자 입장에서는 대체 이 모든 일이 다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주인공의 처절한 사투를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들은 항상 평범한 일상의 균열이 깨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들고,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고, 거짓말이 본색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도록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페이지 터너의 정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롤러 코스터처럼 달려가는 이야기는 인물들 각자의 크고 작은 비밀이 쌓이고, 욕망이 얽혀 엄청난 진실에 이르게 된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의 삶을 어디로 데려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파국에 이르든, 그렇지 않든, 선택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자신이 치뤄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삶의 대부분의 문제는 선택의 도마 위에 놓이게 마련이다. 매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선택의 아이러니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작가가 할런 코벤이 아닐까 싶다. 그의 작품들은 재미 면에서 독자들에게 절대 실망을 시키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특히나 이 작품은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기 때문에, 할런 코벤의 팬이라면 놓치지 말고 챙겨봐야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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