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탑의 살인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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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은 무슨 얼어 죽을 밀실." 카가미가 고개를 돌려 쿠루마를 노려보았다. "실제로 사람이 죽었어. 이건 댁이 휘갈기는 덜 떨어진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고. 설치지 말고 물러나."
"미스터리 소설은 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 미스터리 소설은 작자와 독자가 온 힘을 다해 서로의 지혜를 겨루는 고상한 지적 게임이에요. 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그 가의 살인>을 발표한 이래, 백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예능이라 해도 되겠죠. 치밀하게 복선을 깔고 아름다운 수수께끼를 만들어내는 그 작품은 그야말로 예술 그 자체라고요."         p.66~67

 

깊은 산속에 세워진 원뿔 모양의 유리 첨탑, 이 건물은 미스터리광이자 수집가인 코즈시마 타로가 만든 저택이다. 그는 유전자 치료의 역사를 바꾼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한 생명공학자이자 대부호이기도 했다. 유리탑 모양의 독특한 이 저택에 개성 강한 손님들이 초대된다. 명탐정, 미스터리 작가, 형사, 영능력자, 미스터리 잡지 편집자, 그리고 그의 주치의인 의사까지. 코즈시마는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이들을 모두 초대했다. 하지만 그 대단한 발표를 하기도 전에 살해당하고, 동네로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가 눈사태로 막혀 저택은 고립된다.

 

밀실에서의 살인, 현장에 남아 있는 다잉 메시지, 고립된 등장인물들까지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범인을 밝히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범인이 왓슨이 되고, 명탐정이 홈스가 되어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범인은 자신의 범행을 감추면서, 이후에 벌어진 사건의 범인을 밝혀야 하는 상항에 처한 것이다. 그래야 범인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도 뒤집어씌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름다운 저택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수수께끼에 도전할 수 있다니 꿈만 같다며 들뜬 탐정과 그 곁에서 불안해하며 탐정을 보조하는 범인의 조합이 독특한 시너지를 발휘하며 이야기는 전개 된다. 자, 처참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외부와 연락이 차단됐으며, 산에서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도 사라진 상태이다. 이들은 과연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까. 코즈시마를 죽인 범인과 이후에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범인은 전혀 관계없이 각자의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밀실 세 개에 시신 세 구라. 내가 쓴 본격 미스터리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군." 눈가를 누른 채 힘없이 고개를 젓는 쿠루마에게 츠키요가 말을 걸었다.
"착각이 아닐지도 모르죠."
".......... 뭐라고?" 쿠루마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저희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일지도 모릅니다. '클로즈드 서클'이 무대인 본격 미스터리 소설의 등장인물요."               p.303

 

치넨 미키토가 작가 데뷔 10주년을 기념하여 처음으로 본격 미스터리 장르에 도전하며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사실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작품을 읽었다면, 대부분 작가가 치넨 미키토라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되었던 꽤 많은 작품들이 모두 현직 의사인 그의 장기를 살린 의학 미스터리, 감동 판타지, 로맨스 등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이야기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고립된 저택에서 벌어지는 밀실 연쇄 살인이라는 클로즈드 서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본격 미스터리이다. 그의 전작들에 비해서 분량도 꽤 많은 편인데, 560페이지라는 두툼한 무게가 고스란히 작품의 밀도를 높여주고 있다.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잔뜩 등장인물로 나오는 작품이라, 고전 명작들을 적극적으로 오마주하고, 변주하며 깨알 같은 재미를 주기도 한다.

 

공개되면 미스터리의 역사가 근본부터 뒤집힐 거라는 미공개 원고의 정체, 해외 미스터리 소설의 귀중한 원서로 가득한 책장, 미스터리 영화의 촬영에 사용된 소도구를 전시해 둔 진열장, 유명 미스터리 작가가 사용한 책상 등 으로 가득한 '코즈시마 컬렉션'이 자리한 유리관의 전망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체로 배경이자, 소재이자, 반전을 만들어 내는 장치인 기이한 유리탑까지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가득하다. 탄탄한 구성과 복선, 기가 막히게 만들어진 반전과 시리즈로 다시 만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 모두 완벽한 작품이었다.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절대 놓치면 안 될만한 작품이고,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푹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치넨 미키토가 본격 미스터리를 더 써주길 고대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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