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의 손길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오래전부터 생각했는데, 다이라 선배는 흉부외과 집도의에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에요?" 스와노는 차갑게 말하고 캔 커피를 흔들었다.
"무슨 소리야? 만약 여기서 집도의가 못 되면 지난 팔 년의 고생이 허사가 된다고."
"팔 년이 허사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선배는 정말 자기 평가가 너무 낮아요. 무엇보다 선배는 대학 때부터 흉부외과만 보고 달렸잖아요. 대체 그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겁니까?"          p.133

 

다이라 유스케는 준세이카이의대 대학병원 흉부외과에서 팔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도의 심장 수술을 하기 위해 지식과 기술을 길러 왔다. 환자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하고, 자곡과의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온, 고지식하고 성실한 의사였다. 어느 날 그가 존경하는 아카시 과장으로부터 세 명의 인턴을 가르치는 지도의가 되어달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아카시 과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흉부외과 의사이자 의국 최고 권위자였다. 오래 전 다이라의 어머니를 수술을 성공시켜 그가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스케가 원하는 후지제일 종합병원으로의 파견을 조건으로 인원이 부족한 흉부외과에 인턴들을 입국시키라는 거였다. 셋 중 둘 이상 입국시키면 유스케의 오랜 꿈인 일류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단 실패하면 오키나와의 작은 병원으로 파견되어 의사로서 성장할 아주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된다. 하지만 인턴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의 행동을 오해하고, 결국 그들에게 반감을 사고 만다. 게다가 아랫사람에게 무례하기로 소문난 흉부외과 의국장 히고의 미움을 사게 되어 수술실 퍼스트 어시에서 배제되는 등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그 와중에 의국에 아카시 과장의 부정에 대한 고발장이 도착해 병원 전체에 난리가 난다. 그리고 유스케는 고발장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하는 일까지 맡게 되는데, 과연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후지제일로 파견을 나갈 수 있게 될까.

 

 

 

"여동생을 살리지 못한 것은 자네 탓이 아니야."
유스케가 부드럽게 말하자 우사미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럼..... 그럼 누구 탓인가요? 동생은 왜 죽어야 했나요?"
우사미는 젖은 눈가를 닦지도 않고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유스케는 살살 고개를 저었다.
"누구이 탓도 아니야.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없어도 부조리한 일은 일어나니까. 그게 현실이야. 그리고 의사는 그런 부조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네."            p.252

 

치넨 미키토가 실제로 의사로 활동했다는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 동안 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차가운 숨결>,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가면병동> 등 그 동안 만나왔던 작품들 모두 자신만의 장점을 잘 살려 생사의 생사의 갈림길을 매일 마주하는 의사로서의 고뇌와 병원에서 지내는 환자들의 모습을 현실감있게 그려냈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치넨 미키토가 처음으로 도전한 의료 현장이 배경인 ‘휴먼 드라마’다. 메디컬 미스터리가 아니라 메디컬 휴먼 드라마라고 해서 더욱 궁금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치넨 미키토가 소설가로서 데뷔했을 무렵부터 구상해온 이야기라고 하니 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한 인간의 일과 인생에 대한 갈등을 그린 휴먼 드라마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영화 못지 않게 따스하고,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다이라 유스케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의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카리스마 넘치는 면모를 선보이는 캐릭터도 아니며, 대단한 연줄이 있다거나 집안이 좋다거나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평범한 인물이다. 사내 정치가 돌아가는 데는 전혀 관심없고, 오로지 환자의 마음을 돌보는 데만 온 힘을 다하지만 그걸 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류 흉부외과 의사가 되어 많은 환자를 구하겠다는 꿈 하나로 그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고 믿으며 여기까지 달려 온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단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아무리 사람이 좋더라도 요령이 없다면 어리숙하게 이용당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매 순간 느끼면서 살고 있다. 그렇게 그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인물이라는 점이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방점이 된다. 가슴 뭉클한 메디컬 휴먼 드라마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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