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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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순간 광대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컬러풀한 색채도 그 안에는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금세 새하얀 세계로 바뀌었다. 실제로 하얀 세계를 봤는지 어떤지 사와무라는 알지 못했다. 단순히 머릿속이 공백 상태가 된 것뿐인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런 것이리라. 0점 몇 초 동안의 무아지경…….거기에서 깨어나는 건 착지 직전이다. 문득 깨닫고 보면 그곳에 랜딩 힐이 나타난다. 거대한 흰 벽이 되어 착지면은 점퍼를 향해 덤벼든다. 그것을 벽으로 여기고 두려워하느냐, 아니면 나를 받아주는 존재라고 믿느냐, 거기서 마지막 승패가 갈린다.    p.220

 

‘조인鳥人’이라 불리는 스물두 살의 천재 스키점프 선수 니레이 아키라는 최근 침체의 늪에 빠진 스키점프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국내 대회에서 연젼연승을 기록하고 있었고, 해외 원정 경기에서도 벌써 몇 번째 수상 기록을 남기면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니레이 아키라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식후에 먹은 비타민제 캡슐에 독극물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던 것으러 보였다. 게다가 경찰은 스키점프 관계자 중에 범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시작해 동료 선수와 스태프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다.

 

하지만 수사에는 별로 진전이 없었고, 마침 경찰에 익명으로 한 통의 밀고장이 도착한다. ‘범인은 스키점프팀의 미네기시 코치다. 즉시 체포하시오.’라는 내용에 따라 니레이의 전담 코치였던 미네기시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다. 사실 편지는 미네기시에게도 이미 도착했었다. '니레이 아키라를 죽은 사람은 너다. 자수해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보낸 자는 무슨 속셈인 걸까. 어떤 근거로 니레이를 죽인 사람이 미네기시라고 추리했던 것일까. 이야기는 범인을 추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범인이 밀고자를 알아내기 위해 혼자만의 추리를 시작하고, 그 범인의 살해 동기를 알아 내려는 경찰의 수사 과정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극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상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범인을 밝히려는 서사가 아니기에, 왜 그런 일을 벌인 것인지, 어떻게 살인 사건이 계획된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범인을 쫓는 것보다 더한 재미와 속도감을 가지고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달려간다.

 

 

 

"스포츠 선수들은 그런 냉혹한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깜빡했군요. 그건 선수 본인들이 결코 이런 상황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류 선수들은 하나같이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경향이 있어요. 지금의 나보다 좀 더 강하고 아름다운 것을 향해 내달린다는 겁니다... 일류 선수일수록 좀 더 위로 올라가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걸 보완해주는 게 있다면 누구든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다른 인간을 희생시켜도 괜찮다는 겁니까?"       p.370~371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으로 본격 스포츠 미스터리이다. 스키점프를 소재로 스포츠와 과학을 아우르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장점이 돋보이는 이야기로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스물두 살의 천재 스키점프 선수가 합숙 훈련 도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곧 살인 용의자로 스키점프팀의 코치가 체포된다. 사실 이 작품은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독자들에게 알려 주는데,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상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게다가 누군가 익명으로 경찰에 범인을 밀고하는데, 그 정체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완전범죄를 확신했던 범인은 자신을 지목한 밀고자를 알아내기 위해 추리를 시작하고, 경찰은 범인은 잡았지만 살해 동기와 결정적 물증을 찾지 못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살인 사건 이면에 숨겨져 있던 무시무시한 계획이 실체를 점점 드러내게 된다.

 

높은 곳에서 달려 내려오고, 수십 미터씩 날아가는 스키점프라는 스포츠가 주는 매력을 페이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만의 특별한 장점이다. 마침 동계올림픽이 한창인 시점이라 티비만 틀면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시기라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쉽게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우리 나라 선수들이 스키점프로 출전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래 전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서 스키점프라는 종목은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찔한 높이에서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스릴 있게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스포츠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눈부신 드라마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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