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1~08 세트 - 전8권 전지적 독자 시점 1
싱숑 지음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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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 찜찜한 느낌이 든다. 멸살법은 결국 작가가 만든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는 현실이 되었다.
영혼이 입증되지 않던 세계는 이제 영혼이 당연한 세계로 변했다.
그런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나라든가 영혼이라든가. 그런 건 원래부터 존재했을까? 아니면, 이런 '나'조차 작가가 만든 이야기의 일부일까?              - 3권, p.138

 

스물여덟의 평범한 직장인 김독자, 계약직으로 곧 계약기간이 끝나지만 정직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의 유일한 취미이자 낙은 웹소설 읽기이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소설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꾸준히 봐왔다. 무려 3,149화에 달하는 장편 판타지 소설로 100화부터는 계속 조회수가 1인, 대중성 없고 인기도 없는 그 작품이 독자의 인생 소설이었다. '멸살법'이라는 소설이 있어 일진들에게 찍혀 왕따를 당하던 학창 시절도, 입시를 망쳐 지방 삼류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이직을 반복하다 겨우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도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10년 동안 연재되었던 작품이 드디어 완결이 되었다.

 

 

작품의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에게 작가 tls123이 쪽지를 보내온다.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특별한 선물을 보내주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작품이 내일부터 유료화될 예정이며, 에필로그도 유료로 공개할 거라고 말이다. 다음 날 평소처럼 일을 하고 퇴근 하는 길에 독자는 지하철을 탄다. 작가에게 첨부 파일과 함께 쪽지가 온다. 7시부터 유료로 전환될 예정이라고, 오분 뒤 전등이 픽 꺼지며 지하철 내부가 어두워진다. 지하철이 크게 흔들리며 급정거를 하고, 정전된 객실에 갑작스럽게 괴생명체가 허공에 등장한다. 곧 지하철은 피바다가 되었고, 사람들 눈앞에는 제각기 메인 시나리오라는 작은 창이 떠오른다.

 

김독자는 이 모든 상황들이 소설 속에서 존재하던 그대로라는 것을 알아 차린다. 안테나를 뻗은 도깨비, 객실에 쓰레기처럼 널린 시체들, 피투성이가 된 채 떠는 직장인, 노약자석에서 기도하는 할머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현실이 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자, 그렇다면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당황스러워 하는 사람들 속에서 김독자는 '이 세계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였다.

 

 

샤라락. 샤라락.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활자가 눈처럼 쌓였다. 활자로 쌓은 견고한 이글루. 그 안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어 모험을 하고, 사랑을 하고, 꿈을 꿨다. 그렇게 읽고, 읽고, 또 읽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책을 덮던 순간.
세계로부터 박탈당한 듯한 그 기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8권, p.106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평범한 독자였던 한 남자가 주인공이 되어가는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모든 장면들을 다 섭렵하고 있는 진짜 애독자가 소설 속 판타지 세상으로 들어가 적들을 무찌르고, 아이템을 획득하고, 미션 클리어해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된 현실은 원래 독자가 알던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소설이 현실이 되면서 갑자기 생겨난 인물도 있었고, 그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고, 원래 죽어야 하는 인물이 살거나 설정을 변경하면서 미래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방대한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며 설정 하나하나를 이해했고, 설명의 의미를 곱씹었으며, 마침내 작가의 의도를 알아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멸살법을 이미 다 읽었다 하더라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직접 겪어 내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다.

 

독자는 그렇게 조금씩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나가며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게 하나씩 쌓여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독자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멸살법의 세계를 그 동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텍스트를 열심히 읽고, 궁금해도 알 수 없었던 어떤 감각, 오직 손끝의 페이지로만 느꼈던, 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던 서사의 일부가 온전하게 이해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읽은 것과 이해한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나 역시 독자처럼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어떤 건지 너무도 느끼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이 소설로 바뀌거나 소설 위에 덧씌워진 현실을 체험하지 않는 한 그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네이버 시리즈’ 누적 다운로드 1억, ‘네이버’ 수요 웹툰 1위 <전지적 독자 시점>의 원작. 웹소설의 현재진행형 레전드인 전지적 독자 시점, 일명 <전독시>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전 8권으로 나온 part 1은 전체 이야기의 1/3에 해당되는 분량이며 여름에 part 2,3이 출간될 예정이다. 웹소설은 평소에 잘 읽는 편이 아닌데, 이 작품은 워낙 재미있다고 소문난 명작인데다, 영화화도 앞두고 있어 기대가 되었다.

 

역사와 신화를 아우르며 펼쳐지는 방대한 세계관과 매력적이고 독특한 설정들 덕분에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 속으로 훅 빠져 들어가 읽었던 것 같다. 8권의 책을 단 며칠 만에 모조리 완독했을 정도로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아주 오래 전, 처음으로 소설을 읽었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어서 너무도 설레었다. 밤을 꼴딱 새면서 빠져 들었던 그 이야기의 마법, 활자와 활자가 만들어낸 공간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 모험을 하고, 꿈을 꿨던 그 순간을 새록새록 기억나게 만들어 주었다. 순수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것저것 따지고 분석하지 않고 오롯하게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재미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절들이 한 명의 평범한 독자인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한 것이다. 현실과 소설과 다르지만, 바로 그 이유로 위로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었던 그런 작품이 분명 내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극중 김독자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웹소설이 그러했듯이.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8권 이후의 이야기를 읽으려면 또 몇 개월을 기다려야겠지만, 그렇게 더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설레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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