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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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거라면, 우리가 사건을 해결하면 되잖아." 내가 말한다. "<경찰 순찰대>를 보면 실종자를 찾는 방법이 다 나오거든. 먼저......"
"어쩌면 정령이 데려갔을 수도 있어." 목에 건 닳아빠진 검은 줄 목걸이에 달린 금색 타위즈를 만지면서 파이즈가 말한다. 그 부적이 파이즈를 사악한 눈과 못된 정령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다.
"정령이 어디 있다고 그래. 아기들도 안 믿겠다." 파리가 말한다.     p.36

 

쓰레기장과 높다란 장벽을 사이에 두고 신도시와 마주 보는 빈민가에 사는 아홉살 소년 자이. 작은 양철 지붕 집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이곳에선 공중화장실에도 돈을 내야 사용이 가능하다. 경찰들은 지저분한 마을을 통째로 밀어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었고, 그들을 다 쫓아내는 날이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자이와 같은 반 친구인 바하두르가 실종된다. 바하두르의 아빠는 최악의 주정뱅이였고, 엄마는 일하느라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운 터라, 아이가 사라진 지 벌써 5일째였는데 이제야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바하두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일까, 아니면 정령들이 데려간 걸까.

 

<경찰 순찰대>와 <범죄의 도시> 같은 드라마를 좋아하는 자이는 바하두르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확신한다. 수백 편의 드마라를 봤고, 탐정들이 나쁜 놈을 어떻게 잡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이는 가장 친한 두 친구 파리와 파이즈를 조사원으로 고용하고 탐정이 되어 실종된 친구를 찾기로 한다. 자이 탐정단, 일명 ‘보라선 정령 순찰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빈민가의 아이들은 계속해서 실종된다. 마을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아이가 납치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사건의 실마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오늘은 바하두르와 다른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의 어느 날 같다. 내가 탐정도 아니고 찻집 종업원도 아니었을 때의 어떤 하루 같다. 좋은 날, 어쩌면 가장 좋은 날이다. 탐정이 되는 건 너무 힘들다. 어쩌면 나는 탐정이 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자수스 자이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이쯤에서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커서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받아 온 성적표를 볼 때마다, 파리는 회계사나 지방공무원이 될 거고 나는 파리의 하인이 될 거라고 말한다.        p.283~284

 

'아이들에 관한, 오직 그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라고 작가가 말했듯이, 이 작품은 빈민가 아이들의 유쾌함과 당당함이 페이지마다 묻어나는 작품이다. '보라선 정령 순찰대'의 멤버인 자이와 파리, 파이즈가 각각 성격이 달라 귀여운 매력을 발산한다. 자이는 공부는 잘하지 못하지만, 수사 드라마를 수백 편 본 애청자로 그렇게 쌓은 수사력을 적극 활용한다. 파리는 늘 도서관 책을 끼고 사는 지적인 소녀로 팀내에서 지식 부족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파이즈는 팀의 행동대장격으로 정령에 대한 많은 지식으로 수사에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수업을 빼먹고 보라선 열차를 타기도 하고, 값비싼 보라선 전철 푯값때문에 시장의 찻집에서 일을 하고, 찻집 종업원이라는 신분은 유령시장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며 유령시장과 빈민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자이 탐정단의 활약은 시리즈로 이어져도 좋을 만큼 흥미로웠다.

 

2021년 에드거 상 수상작으로 디파 아나파라는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을 아우르는 영미 문단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인도 출신 영국 작가인 디파 아나파라가 뭄바이와 델리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당시의 경험과 인도에서 나고 자란 기억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하루에 180명이나 되는 어린이가 실종되고 있으며, 이런 사건은 유괴범이 체포되거나, 혹은 잔혹한 범행이 세간에 알려져야만 비로소 뉴스에 나온다고 한다. 언론은 범인들에게만 관심을 쏟는데 반해, 디파 아나파라는 사라진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빈곤 가정의 실종된 아이들이 통계수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숫자 뒤에 숨겨진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인도의 빈민가라는 이국적이고 낯선 풍경을 실제 그 거리를 걷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어, 인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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